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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 여행

수덕사

by 비아(非我) 2017. 1. 10.

수덕사

- 충남 예산군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고찰

-오며가며 자주 들리는 절이다.

전에는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아주 고즈넉하여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무척 좋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관광지로 개발이 되고는 주차장에서부터 입구까지 식당과 상가가 들어서고,

찾는 사람도 아주 많다.

아주 오래전 넓은 찻집에 앉아 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녹차를 하염없이 마시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들려 사진 한장을 박아오고는  사진을 보고 여기에 올려본다.

 - 뒤의 산 덕숭산은 초입이 가파르고 메말라 높지도 않은 산이 다소 힘겹계 오르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래전이라 어떻게 변했는지,,,요즘은 10년도 안되 강산이 바뀌는 시대라....쩝.

 

-(전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이 여인을 구경하러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한 정혜라는 청년은 인생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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