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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대온실 수리 보고서

by 비아(非我) 2025. 5. 6.

- 김금희 장편소설

- 창비 출판

- 2024년판

 

 

요즘의 작가들은 (전에는 더 했나?) 아무튼.

어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하며 감탄하게 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정말 잘 구사한다.

그래서 소설가이기는 하겠지만.

늘 소설을 읽으며 감탄하게 되는 그런 점이다.

 

김금희 작가도 그런 작가에 속한다.

아래 <책 속으로>에 인용한 문장들을 살펴보면 당장 이해가 갈 거다.

 

이건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으며 문장력에 감탄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 이고.

소설  전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처음 화자인 '나'가 석모도에서 나와 서울로 유학은 오고,

하숙집에서 여러 사람과의 관계, 새로운 학교 등에서 맺게되는 갈등과 외로움, 고통

등에 관한 이야기 부분은 감동적으로 읽었다.

섬세한 사춘기 소녀가 갖게 되는 상처와  낮선 곳에서의 외로움,그리고 갈등과 억울함에 대한 묘사들은

너무도 감각적이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굉장한 흡인력을 준다.

 

그러나

대온실수리보고서에 얽히 이야기 인지라

사건 전개의 주는 사실 하숙집 할머니에 관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해방후에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들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작가는 무엇을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하는 의문이 이야기의 감동에 앞서 자꾸 드는 거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 시절의 역사적 아픔과, 그 속에서 희생당한 위안부할머니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잊혀지며 지낸다.

일제에 충성한 한국인이 건설한 대온실보고서가 우리에게 무슨 이해를 바라는가?

일제에 충성하고, 해방후에도 역시 재산과 권력을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에대해 죄를 묻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인 전체를 비난하고, 용서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일본인이 왜 없겠는가?

 

버림받고, 소외되고, 나약하게 당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희망과 힘을 말하고 싶었다면

왜 그 대상이 일본인 할머니여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우린 서로에게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고, 혹은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모든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되지만

모든 이들을 용서해서도 안된다.

 

젊은 작가의 역사의식이

혹시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 모두의 역사의식이 될까봐 겁이난다.

 

슬픔과 아픈 역사 속에서

서로 보듬어야 할 대상은 모두이겠고,

역사속에서 희생된 일본인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면

주인공인 '나'와 '리사'의 관계처럼 말로 사과한다고 될 일일까?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유홍준 교수님이 왜 그러셨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떤 점에서? 

내가 너무 꽉 막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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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볼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 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다 그 무거운 무력감과 새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pp.156~157)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를 때 하는 게 기도야.(p.158)

 

시간이든 생각이든 한번 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남겨두었다가 거기에 다시 시간과 생각을 덧대 뭔가 큰 것 만들어가는 사람 같다고. (p.163)

 

그 얘기에는 흩날리는 지금의 입김 같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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