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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by 비아(非我) 2025. 5. 20.

- 비르지니 데팡트 장편소설

- 김미정 옮김

- 김영사 출판

- 2025년판

 

 

-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라는 도발적 제목의 이 작품은 펑크 페미니스트 소설가 비르지니 데팡트의 신작이다.

- 오스타와 레베카 가 주고 받는 편지글과 그리고 조에의 인터넷 글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대로 옮겨보면>

 

 오스카 : 사심삼 세의 소설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볼 법한 지질함을 갖추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선망하던 배우의 오모를 폄하하는 말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그 배우로부터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답장을 받는다. 자기 책의 홍보담당자에게 미투 고발을 당환 상황이며, 알코올과 마약 등 온갖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레베카: 남성들의 벽을 장식한 포스터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배우이자 스타, 오십대에 접어들면서 나이로 인해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제한되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이십대 여성 조에의 글을 접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여성이 처한 현실과 여성의 언어를 자각한다.

 

 조에: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하며 SNS를 통한 교류에 집중한다. 온라인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잃고 강박적 불안에시달리게 된다.

 

- 오늘날 일상적 소통을 담당하는 SNS와 이메일, 블로그형식이 두루 등장하는 가운데 이 책의 주된장치인 편지는 인물들의 근원적 고독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 거기에 코로나로 인한 봉쇄, 마약과 알코올의 중독 문제, 나이 듫과 혐오 논쟁, SNS와 공격적인 온라인 환경 등이 진지하게 다루어진다. 

 

---------------(pp. 408-410. /옮긴이의 말' 중에서 )-------------------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이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순전 <친애하는 개자식>이라는 도발적 제목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은 또 다른 현대를 살아간다.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문학들과는 다른 이슈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곤한다.

 

처음 부분의 이메일들을 읽을 때는

정말 찌질한 이들의 변명을 듣고 있는 것 같아, 재미가 없었는데,

중간 부분에 이르면

이들의 성격과 상황이 파악되면서 점점 읽는 속도가 붙고, 재미 있어진다.

 

'미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이슈이고,

여전히 '페미니즘'의 문제는 해결과정에 있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문제는 종교와도 어우러져 더욱 많은 논란이 되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은 현 한국사회에서도 아직 저항이 만만치않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인터넷상의 보이지 않는 비방은 심해진다.

차이와 차별의 문제는 사회가 발전할 수록 더욱 심화될수 밖에 없는 문제일까?

 

- 남성 권위주의 사회에서, 조에의 다음과 같은 글은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운가?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관대합니다. 남자들에 대해 우리는 낙태를 시키지 않을 것이며,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지도 않을 것이며, 장장더미 위에서 화형시키지도 않으며, 거리에서 죽이지 않은 것이며, 조깅할 때 죽이지 않을 것이며, 숲속에서 죽이거나 집으로 데려와 죽이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태생적 성별을 들어 수치를 주지 않을 것이며, 거기지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강간하지 않을 것이며, 테이블 아래로 더듬지 않을 것이며, 섹스하고 싶어한다 해서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공공장소에 나가지 못하게 금하지도 않을 것이며, 권력의 서클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이며, 신체 일부를 난도질하지 않을 것이며, 원하는 대로 옷 입는 걸 금지하지 않을 것이며,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열정을 품고 집을 떠날 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을 것이며, 성생활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우리 소유인 양 모든 행적과 선언을 감시하지 않을 것이며, 머리모양 좀 신경 쓰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순종하지 않을 때 치욕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평등을 언급할 때 우리는 이런 평등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pp.357-358. 조에 카타나의 글 중)

 

'친애하는 개자식들에게'한 방 날리는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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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80년대 영화산업은 여러 해방 운동의 흐름에 가장 억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답변을 선언하는 책무를 맡았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내놓았죠. 여성의 용도는 욕망 혹은 강압의 대상이 되는 것, 흑인의 용도는 가사 일을 하거나 춤을 추는 것, 뚱뚱한 사람의 용도는 웃기는 것, 혁명가의 용도는 처단당하는 것, 가난한 사람의 용도는 배곯아 동정받다가 친절한 부자에 의해 구원받는 것, 외계인의 용도는 제거되는 것 등등.

메시지의 형태는 유혹과 광고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지성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분별없은 사람들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부자 만세, 권력자 만세, 전쟁 만세.

(p.235 . 조에 카타나의 글 중)

 

- 영화는 부유한 남성의 권위주의를 실어 나르는 강력한 목소리입니다. 권력을 소유한 백인 남성은 자신의 거만함이 확실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민고 있습니다. 그가 온갖 방법으로 되풀이하는 말은 군대를 찬양하고,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들어오지 못한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것은 울며 도망가는 여성과, 분노에 차 헛소리를 지껄이는 무장한 남성입니다. 한쪽은 먹잇감이 되고 다른 쪽은 사이코페스 약탈자가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예술인지!(p.237. 조에 카타나의 글 중)

 

 - 명성은 하드코어 마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명성에서 위안을 구하는 일은 당신을 파괴하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팔아넘기는 거지요, (중략) 명성은 당신을 스스로에게서 빼앗아요, 명성은 특권이죠, 그리고 어떤 특권이든 보통은 과도한 대가를 치러랴 행사하는 법입니다.(p.255. 레베카의 편지글 증)

 

- 감정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고 기후변화이며 변함없는 화산 용암이자 바이러스의 폭격입니다.(중략) 우리 세대에 급격히 퍼진 감정은 절망입니다. 집단적으로 퍼져 있어요, 지구 중심에 요란하게 상륙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봉기시킨 것을 바로 그 감정입니다. (중략) 그것은 다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화음이며, 무슨 일이 발생하든 울려 퍼질 것입니다.

당신의 절망을 파괴하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입니다. 무척 간단한 문제죠, 희망은 절망을 지우는 단 하나의 해독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수당한 것 또한 희망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지평선이 되어버린 겁니다.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리라 믿는 건 머저리라는 방증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전제주의입니다. 획일화된 신념이 우리 상상의 세계를 빼앗은 셈이죠,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멍청이들에게나 유익한 겁니다.(pp.285~286. 오스카의 편지 중)

 

- 이제 사람들은 지식에 대해, 규칙의 이해에 대해, 윤리적 통합에 대해, 문화에 대해, 수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추론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동의 삶을 평화로운 시간으로 만든 것 중 어느 것도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 번의 전쟁을 거쳐 겨우 자리 잡은 문명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죠...... 그 후로 다 코드인 겁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기계가 제공해줄수 있는 코드를 찾는 것 말이죠. (p.348. 오스카의 편지)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그는 기차표만을 응시하며 다은 난관을 기다랍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노동과 기계의 놀라운 엄격함 사이에서 궁지에 몰려 머저리 같은 존재가 됩니다. 기계가 그에게 인간의 무능함을 직시시켜주는 것이죠.(p.349. 오스카의 편지)

 

- 미묘한 차이를 더하면 증오와 경멸에 휩싸인 불인 거죠, 물론 즐길 거리이기도 하고요, 낄낄거리기에 얼마나 최적의 기회인가요! 그것이 한 여자가 강간당하는 동안 카메라를 쥐고 있는 남자의 즐거움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같은 즐거움이니까요, 근원은 같으니까요, 당신들은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축축한 따, 독으로 오염된 땅의 어둠 가운데에서 자신을 찾고 있던 것입니다. (p.391. 조에 카타나의 글 중)

( 인터넷 뒤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방의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미투'를 보면서 여자의 잘못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 수치심을 느끼라고 하는 댓글들, '강간당하는 동안 카에라를 쥐고 있는 남자의 즐거움'에 표현한 것을 보고, 너무도 깜작 놀랐다. 얼마나 신랄한 표현인가?  증오와 경멸, 그리고 혐오, 이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익명의 뒤에 숨은 비겁함에서도. ) 

 

-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의 집이에요, 같은 적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집, 동일한 고문자, 동일한 학살자, 동일한 강간범, 그들 편에서 보호받는 동일한 스토커와 대한하는 곳.(p.395. 조에 카타나의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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