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머스 울프 지음
- 진형준 역
- 살림출판
- 2023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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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토마스 울프의 자전적 소설이다.
토마스 울프의 소설 4편은 모두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 이 소설은 조지 웨버라는 한 인물이 작가로서 재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으로 되돌아보며, 작가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고뇌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된다는 무엇인가? 예술가와 생활인이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찾고 고뇌한다.
- 1920년대와 30년대 유럽과 미국의 정치 경제적, 그리고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고향 마을에 일고 있는 맹목적 부동산 투기 열풍에 대한 깊은 탐색, 30년대 중반 미국의 기업과 상류사회에 대한 성찰, 진지함이라고 사라진 채 가벼운 유행에 휩쓸린 사교계와 지성 사회에 대한 비판, 모순된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과 비판, 미국의 주식 대폭락이 오게 된 원인과 그 의미에 대한 성찰'(해설.p.358)로 가득차 있다.
- 울프는 이 소설속에서 그의 글에 대한 묘사처럼 '4개의 형용사가 필요한 문장에 20개의 형용사를 사용하는' 만연체의 글쓰기 솜씨를 보여준다. 그 만큼 세밀하고 자세한 인간에 대한, 삶에대한 탐구가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대는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한 문장에 담긴 의미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표현은 그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다시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낭만적인 사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영광과 명성을 향한 젊은 시절의 꿈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랑 생활, 유럽이나 다른 나라로의 도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서정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 노래를 위한 노래, 예술을 위한 에술로, 유미주의로 돌아갈 수 없다. ‘예술가’에 대한 젊은 시절의 이상으로, ‘예술’과 ‘미’와 ‘사랑’에 자족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투쟁과 갈등을 등지고 버뮤다 섬의 오두막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잃어버린 아버지, 열심히 찬자온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 너를 구해주고 네 짐을 덜어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마치 영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항상 변화하는 낡은 형태와 체계로 돌아갈 수 없다. 시간과 기약이라는 탈출구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모든 의미를 그 문장은 담고 있었다. (2편. p.271)"

- 소설 속 폭스홀 에드워즈와 조지 웨버와의 관계는 실제 작가 울프와 편집인 맥스 퍼킨스와 실제 우정을 반영한다.
울프에게 맥스는 아버지나, 친구이자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준 진정한 지기였다.
이들의 관계를 영화한 것이 <지니어스>라는 영화이다.
토마스 울프라는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위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소설속에서 웨버는 폭스홀을 이렇게 묘사한다.
"폭스는 소년처럼 순진하면서 동시에 교활한 사람이었다. 곧고도 교활하고 교활하면서도 곧은 사람이었다. 그는 구부러지기에는 너무 곧았고 남에게 질투심을 느끼기에는 너무 차분한 사람이었으며 맹목적으로 편협해지기에는 너무 공정한 사람이었다. 남을 증오하기에는 너무 바르고 통찰역이 있었으며 강했다. 비열한 뒷거래를 하기에는 너무 정직했고 남을 의심하기에는 너무 고샹했으며 악당 무리처럼 그 무언가 은밀히 꾸미기에는 너무 순수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거래에서도 결코 손해를 보거나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삶의 소년이었고 삶의 진짜 자식이었다. 폭스란 인물은 삶의 교활성과 순진성 그 차체였다. 그는 결코 삶의 천사도 아니고 삶의 바보도 아니었다.(2편.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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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벌거벗은 눈이 눈길을 번득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그를 꿰뚫고 있었다.(p.144)
조지에게는 모든 일의 발단이 바로 거기에 잇는 것 같았다. 바로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거기, 마치 어두운 벌판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맥박 소리처럼, 굶주린 사람들의 모든 정열, 희망, 배고픔이 고동치던 수없이 많은 작은 마을들과 수천 만의 불모의 거리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 기나긴 밤들, 바로 그곳에서 이런 광기가 빚어진 것이다.(1편 p.165)
광기는 온종일 그들을 감싸고 있었으며 그들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렇다 분명 그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 느끼더라도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 심지어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 특질 중의 하나인 때문이다.(p.1편, p.227)
정직하고 진실한 것, 그리고 진리를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말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모든 예술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그 어떤 다른 것, 부나 명예를 비롯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그것을 지켜내지 않는다면 글 장사꾼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1편. p.331)
유행에 몸을 파는 자는 시간에 몸을 팔게 되리라.(1편. p.332)
그 욕망이 마치 늪가의 어두운 숲처럼 은밀하게 숨을 죽이고 남몰래 먹이를 찾아 배회하다가 분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2편. p.18)
- 지식인들의 가장 큰 맹점은 그들이 결코 지적이지 않다는 데 있었다. 그들의 이른바 ‘관점’이라는 것은 아예 초점이라곤 없는 오만가지가 뒤섞인 독단적이고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관점일 뿐이었다.(2편. p.108)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인들은 아무것도 배우는 게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는 반추와 소화의 능력이 없다. 그들은 되돌아볼 줄 모른다.(2편. p.109)
인간은 빵을 구하기 위해 말(言)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예수가 왔다. 인간은 싸움터에서 부를 노래가 필요했다. 그래서 호메로스가 왔다. 인간은 적들을 저주할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단테가 왔고 볼테르가 왔으며 스위프트가 왔다.(2편. p. 130)
명성을 향한 욕망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중에서 가장 강력한 욕망이며 바로 그 때문에, 또한 그 욕망이 하도 깊이 은밀하게 숨어 있기에 사람들은 그 욕망을 인정하기를 가장 꺼린다. 특히 자기 내부에서 명성을 향한 욕망이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2편. pp.139~140)
믿음은 본질적으로 의혹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실재의 정수는 질문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본질은 흐르는 데 있지 고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념의 본질은 모든 것이 흐르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성장하는 사람은 살아 잇는 사람이고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철학’도 그와 함께 성장하고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변하지 않는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은 줏대가 없는 사람, 영원히 실없는 사람, 오늘은 너무 굳은 사람이었다가 내일은 흐물흐물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이 신념이라는 것은 일련의 고착된 생각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립니다.(2편. p.319)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 우리가 보고 알 수 있도록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바로 지금을 위해서이고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적이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우리 속의 진리라는 용기를 가지고 그에 맞서야 합니다. 그러면 적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정복한 후에 새로운 적이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들과 맞서서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닥. 그 사실을 긍정하는 것, 끊임없는 싸움을 지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종교요,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2편.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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