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기마상
- 쌍뜨 페쩨르부르그 (8)
<청동 기마상>-푸시킨
서시
파도가 출렁이는 외딴 강기슭에
위대한 상념에 잠겨 먼 곳을 바라보며
<그>는 홀로 서 있다. 그이 앞에는 큰 강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강 위엔
쪽배 한 척 외로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끼로 덮인 강변의 진흙 밭에는
가난한 핀란드 인의 보금자리.
오두막이 점점이 박혀 있고
자욱한 안개에 가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수림은
사방에서 술렁거렸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부터 스웨덴 인을 위협하리라.
이곳에 도시를 세워
오만한 이웃 나라를 제압하리라.
대자연이 우리에게
유렵을 향한 창문을 열고
바다에 튼튼한 두 발을 디디라 명하였으니
이제 새 항로를 따라 이곳으로
뭇나라 선박이 깃발을 날리며 모여들어
우리는 마음껏 주연을 베풀리라.
그로부터 어언 1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 도시는
어두운 숲속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
한때 대자연의 가련한 의붓자식
핀란드의 어부가
저 아래 강변에 홀로 앉아
천길 만길 알 수 없는 물 속에
낡아빠진 어망을 던지던 곳,
지금은 생기를 되찾은 기슭에
으리으리한 궁전이며 탑들이
빽빽히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 선박들이
이 풍요로운 항구를 향해 속속 모여든다.
네바 강 양쪽으로 화강함 깔리고
물 위엔 다리가 놓이고
강물에 떠있는 섬들은 녹음 짙은 정원으로 뒤덮였다.
이 젊은 수도 앞에서 옛 모스끄바는 빛을 잃었다.
마치 새 황후 앞에 선
과부 황태후처럼.
너를 사랑한다. 뽀뜨르의 참조물이여.
나는 사랑한다. 너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네바 강의 힘찬 흐름을, 강변의 화강암 둑을,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을,
생각에 잠긴 밤들의 투명한 어둠을, 백야의 섬광을,
내가 등잔불도 안 켜고 방안에 앉아
독서와 글쓰기에 열중할 때
텅 빈 거리의 조는 건물들
뚜렷이 보이고
황금 빛 하늘을 뒤덮을 새도 없이
반시간이 채 못 되어 저녁 노을은
아침 노을로 바뀌어 버린다.
나는 사랑한다. 네 엄동 설한의
얼어붙은 대기를, 눈서리를,
광활한 네바 강을 달려가는 썰매를,
장미보다 더 빨간 처녀들의 볼을,
--후략-
--「청동 기마상」(2001, 열린책들), PP.347-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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