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행 · 책· 영화. 그리고 채움과 비움.
갈 곳 많은 지구 여행

러시아-청동 기마상

by 비아(非我) 2018. 11. 16.

청동 기마상

- 쌍뜨 페쩨르부르그 (8)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청동 기마상>-푸시킨


서시


파도가 출렁이는 외딴 강기슭에

위대한 상념에 잠겨 먼 곳을 바라보며

<그>는 홀로 서 있다. 그이 앞에는 큰 강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강 위엔

쪽배 한 척 외로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끼로 덮인 강변의 진흙 밭에는

가난한 핀란드 인의 보금자리.

오두막이 점점이 박혀 있고

자욱한 안개에 가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수림은

사방에서 술렁거렸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부터 스웨덴 인을 위협하리라.

이곳에 도시를 세워

오만한 이웃 나라를 제압하리라.

대자연이 우리에게

유렵을 향한 창문을 열고

바다에 튼튼한 두 발을 디디라 명하였으니

이제 새 항로를 따라 이곳으로

뭇나라 선박이 깃발을 날리며 모여들어

우리는 마음껏 주연을 베풀리라.


그로부터 어언 1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 도시는

어두운 숲속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

한때 대자연의 가련한 의붓자식

핀란드의 어부가

저 아래 강변에 홀로 앉아

천길 만길 알 수 없는 물 속에

낡아빠진 어망을 던지던 곳,

지금은 생기를 되찾은 기슭에

으리으리한 궁전이며 탑들이

빽빽히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 선박들이

이 풍요로운 항구를 향해 속속 모여든다.

네바 강 양쪽으로 화강함 깔리고

물 위엔 다리가 놓이고

강물에 떠있는 섬들은 녹음 짙은 정원으로 뒤덮였다.

이 젊은 수도 앞에서 옛 모스끄바는 빛을 잃었다.

마치 새 황후 앞에 선

과부 황태후처럼.


너를 사랑한다. 뽀뜨르의 참조물이여.

나는 사랑한다. 너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네바 강의 힘찬 흐름을, 강변의 화강암 둑을,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을,

생각에 잠긴 밤들의 투명한 어둠을, 백야의 섬광을,

내가 등잔불도 안 켜고 방안에 앉아

독서와 글쓰기에 열중할 때

텅 빈 거리의 조는 건물들

뚜렷이 보이고

황금 빛 하늘을 뒤덮을 새도 없이

반시간이 채 못 되어 저녁 노을은

아침 노을로 바뀌어 버린다.

나는 사랑한다. 네 엄동 설한의

얼어붙은 대기를, 눈서리를,

광활한 네바 강을 달려가는 썰매를,

장미보다 더 빨간 처녀들의 볼을,


--후략-


--「청동 기마상」(2001, 열린책들), PP.347-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