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 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책속으로>
1. 대상 수상작 이승우 <마음의 부력>
-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행위와 같은 것이 된다. 이긴 사람이 호명되면 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p.37)
-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p.47)
2. 이승우<부재증명>
- 하지만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면, 내가 인식하는 나를 빼놓고 구성된 나를 빼버리면 존재의 기틀을 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타인들이 증명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를 빼놓고 구성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확실하고 완벽한 부재 증명을 통해서만 겨우 성공할 수 있는 나의 불안정한 존재 증명,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인지, 나는 당신들의 부재증명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존재하게 된다.(p.103)
중력과 부력이 같은 힘으로 존재하며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평형상태를 이루는 것이 사랑의 반대하는 것을 인식할 때. 그제야 우리는 과도함과 부족함 모두 사랑하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사랑이 배제를 전제하듯 배제도 사랑을 전제한다.(p.144. 박혜진.“마음의 부력과 이승우의 작품세계)
3. 장은진 < 나의 루마니아 수업>
- 왜 마음을 준 것들은 항상 예고 없이 떠나버리는 걸까. 떠나겠다고 말하고 떠나는 건 떠나는 게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말이 있으면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떠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 말없이 떠나는 것들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갑자기 가버리는 건지도 모른다고.(p.244)
4. 선정경위와 심사편 중에서
- 황망한 날들이라고 쉽게 말해버리지 않고 여전히 삶의 의미와 형식에 관래 질문하며 끝내 어렵게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소설들이 있다는 것,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p.323. 안서현)
- 토로나에 뒤덮여 삶의 형식이 무너지고 생활의 루틴이 와해돼 이대로 일상의 몸짓과 감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른 시계로 등 떠밀려 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과 섬뜩한 상실감이 번져나간다. 이런 때에 몸과 마음과 일상성으로 다양한 차이를 만들어내며 존재의 메시지를 형상화하는 소설의 효용성과 의미가 더욱 빛나는 것 같다.(p.339. 전경린)
시간은 쌓이는 기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기억은 멀쩡한 다리에 신경증적 통증을 악화시키고 지나간 절망을 현재화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제 안에 못박는다. (p.340.전경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