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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이야기

오래된 농담

by 비아(非我) 2021. 6. 3.

- 비가 자주 내린다. 해를 보는 시간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는 시간이 더 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칠 때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진 요즈음 서늘한 날씨는 좋으나, 잦은 비로 더욱 우울해지는 것만 같은 착각속에 빠진다.

 

책을 읽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여기에 옮겨 적어 본다.

유머와 위트가 관계속에 필요한 때이다.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케보다 깊어 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 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말을 기억해 낸

늙은 나애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잔뜩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징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더 깊고 서늘했다.

 

(천양희, 「오래된 농담」,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60-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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