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 김보은 옮김
- 디플롯 출판
- 2024년판 (초판 2019년)

- 음모론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한 책이지 싶다.
-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거짓 정보에 속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 쇼셜미디어로 모든 뉴스와 정보를 취하는 현 세대는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점점 편향적 정보에 길들여져가는 구조다.
- 그냥 던져보고, '아님 말고 식' 자신의 말이 일으킬 묘한 반영만을 생각하여 상대를 비방하고 책임지지 않는
장면들이 뉴스를 도배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을 읽는 내내 현 한국사회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나도 나에게 맞는,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편향적 사고를 하고 있거나. 휴리스틱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거짓 정보와 음모에 속지 않으려면 이책을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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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빨리 믿는다. 충분히 반복하면 조만간 믿게 된다. (p.31)
- 하나의 음모론을 믿으면 다른 음모론도 믿을 연관성이 매우 높았다. 일단 음모론을 받아들이며 온 사방에서 사악한 책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분열사고 갈라놓는다. 민주주의 자체는 부서지기 쉽다. 단 하나의 세상을 공유하면서 기본적인 사실조차 합의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비판적 사고를 중심으로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주장을 발전시키고 엄격하게 검증하는 것이다. 비판적인 검증을 통과하면 잠정적으로 수용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폐기한다. (p34)
- 음모론(음모론적 주장)은 음모론자들이 자신의 음모론을 반박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기본적인 비난이다. 이런 비난은 실제로 힘들게 싸우지 않고도 모순이 불러올 인지적 충돌을 막아 상충하는 정보를 무효화한다.(p.61)
- 인간에게는 특정 사례가 얼마나 예시적이거나 특별한지를 더 상세하게 알려줄 기본 정보는 무시하면서도 생생하고 특별한 사례에는 집중하는, 어쩌면 당연한 성향이 있다. 이를 기저율 오류라고 하며 숨겨진 진실을 평가하지 않고 하나의 사례에서 곧바로 결론으로 도양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가리킨다. 경험담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관심을 잡아끄면서 이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p.90)
- 환원 오류에서의 호소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쉬우며,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고 매끄럽게 설명한다. 이해한다는 착각은 안도감과 확신을 주며, 혼란한 세상에서 심리적인 애착 이불과 보호 토템 노릇을 한다. (p.121)
- 이 논증(허수아비 논증)의 가장 기본은 ‘미끼와 바꿔치기’ 전략이며,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는 대신 무너뜨리기 더 쉬운 대체물을 공격해서 반박했다는 인상을 준다. 허수아비 논증은 특히나 적절한 이름인데, 검사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적 대신 짚으로 만든 모형을 상대로 기량을 뽐내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p.172)
- 표면상으로는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겉으로 보이는 확률의 직관적인 단순함이 종종 환상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숫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진실로 이해하려면 맥락과 숙고가 필요하며, 때로 숫자가 전달하는 진실한 메시지는 우리가 받은 첫인상과 완벽히 상충할 수도 있다. (p.293)
우리는 직관적으로 숫자가 스스로 말한다고 믿지만, 숫자를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p.293)
- 통계에는 직관적인 호소력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복잡미묘함을 가려서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로 허둥거리며 거짓으로 향하게 된다. 실제 맥락에서 숫자들을 재해석하는 단계를 우리는 너무 자주 건너뛰어버린다. 의심스럽다면 인상적인 통계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거기서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지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다.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숫자 때문에 혼란에 빠지거나 이념적으로 비뚤어진 채 길을 잃을 위험이 있다.(p.328)
- 공명정대가 곧 기계적 중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증거의 무게가 반박의 여지없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도 완강하게 양쪽을 똑같이 가치 있다고 보도하면 끔찍한 생각과 허튼소리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p.336)
기계적 중립은 충돌하는 주장 뒤에 있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공정성이라는 확산에 집착할 때 번성한다. 객관적인 과학 주제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p.337)
- 알고리즘은 정확하게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수긍할 내용을 예측하는 동시에 편안한 소규모 집단의 경계 너머에서 도전해오는 정보와 견해, 신념은 추방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전달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차단하도록 미세 조정한다. (p.357)
- 음모론 집단 속에서 완전히 터무니없는 관점은 반박당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받는다. 가장 중요한 비판이 없는 곳에서 구성원들은 오직 앵무새처럼 되돌아오는 자신의 믿음, 비슷한 주장의 합창으로 키운 자동 반복 반응만 듣는다. (p.380)
- 과학에서는 가설이 얼마나 우아하든 간에 아주 약간의 반박 자료로도 가설을 폐기할 수 있다. 반면 믿음은 조사의 영역을 넘어서는 자명한 이치를 세우며, 믿음을 보존하기 위해 증거를 폐기하는 일을 종종 미덕으로 여긴다. 믿음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아니면 그 외의 것이든 다르지 않다.(p.437)
- 믿음과 마찬가지로 이념 또한 굽히지 않는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 나쁜 습관이 있으며, 해당 이념의 교리에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무시한다.(p.475)
- 우리 대다수는 자기만의 반향실에 거주하면서 편견에 저항하기보다는 안심 시켜주는 정보를 찾는다. 우리가 점점 더 완벽하게 양극화될수록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기가 더 어려워지며, 이는 무관심과 냉소로 몰아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무관심은 우리 모두의 적이다. 무관심이라는 주문에 걸린 사람들은 위험할 정도로 순응한다.(p.476)
- 지금의 상황은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무관심으로 후퇴하는 것이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무관심은 적이다. 분리되어 있으면 거짓에 도전할 수 없고, 무력감에 시달린다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분투할 수도 없다. 오직 “왜?”그리고“왜 안돼?”라고 물의려는 의지만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조종하려는 무리에게서 보호해주고, 우리가 함께 마주한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책을 향해 나아갈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p.511)
결국 인간이 번영할지 소멸할지는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느냐 실수에 굴복하느냐에 달려있다. (p.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