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행 · 책· 영화. 그리고 채움과 비움.
주절주절 이야기

인지 왜곡

by 비아(非我) 2025. 6. 22.

"인간의 마음은 사건과 대한 서사를 뒤섞어버리고, 순서를 윤색하며, 단순화하는 기상천외한 성향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은 틀림없는 사건의 기록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 자신과 타인이 조작하기 쉽기로 악명 높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조차 믿음직하지 못하며 생각보다 타인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 <페이크와 팩트> p.214) "
 
"기억은 우리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기억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굴러다니는 바위에 닻을 내린 격이며 가라앉을 위험을 초래한다. (같은 책. P.228)"
 

(구글이미지)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
약속에 나가려고 자동차키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소리를 내거나 찾아주는 무슨 장치 같은 것이 이 첨단시대에 왜 개발이 안되는지 원망스러워진다. ㅜ ㅜ
 
늘 차키를 넣어 놓은 가방에도 없고,
혹시 실수로 서랍이나 냉장고 안에 넣었나?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급히 찾으니 안보이는 건가 싶어 , 한 숨 돌리며, 휴대폰으로 약속에 못가겠다고 연락을 먼저 한다.
 
다시 찾기 시작.
할 수 없이 어제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면서 길에 떨어뜨렸나? 자동차 안에 넣어두었나? 싶어 밖으로 나간다.
자동차 안에도 없고, 길바닥에도 없다.
떨어진 것을 누가 주워갔나? 다시 몇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자동차 밑까지 살핀다.
어디에도 없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 어제 만진 모든 것을 반복하며 다시 열었다 닫았다 한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
음...내가 어제 들어오면서 감자 말린 포대를 창고로 치웠지...창고로 가서 창고에 쌓아논 물건들을 뒤진다.
창고에도 없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 생각한다.
 
'현관으로 들어와서 종이컵을 들고 연못에 물이 넘칠까봐, 물을 퍼 주었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마당으로 나와 화단 구석구석 어제 간 동선을 따라 살핀다.
화단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에고....
화단은 분명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종이컵을 들고 나갔으니, 
가방을 두고 갔을텐데...
 
다시 대문밖으로 나가 어제 저녁에 다닌 동선을 따라 다시 찾기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3번 쯤 반복하다. 저녁 무렵이 되었다.
포기하고 밥을 짓는다.
쌀을 씻고 생각해보니,
'아, 어제 깻잎을 뜯어 조려 먹었지!'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밖으로 급히 뛰어나가, 깻잎밭의 무성한 깻잎들을 제쳐 본다.
드디어,
깻잎사이에 떨어져 있는 자동차키가 보인다.
'와~~~'
 
하루 종일 찾아도 없던 자동차키가 왜 낏잎 밭에 떨어져 있었을까?
분명히 마당의 탁자에 가방(자동차키를 늘 가방에 넣는다)을 두고, 포대를 창고로 치우고,
현관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컵을 들고 연못으로 갔을텐데....?...
늘 밭은 빈 손으로 나가지, 가방을 들고 나가는 법이 없는데...
 
인지왜곡이다.
기억을 되살려 서너번을 반복했으나,
가방을 매고, 저녁거리를 위해 집으로 들어가면서 깻잎을 딴 사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그리 한 모양이다.
창고, 그다음 현관 , 부엌, 종이컵, 화단. 텃밭 이렇게 나의 행동 반경이 기억으로 순서가 저장되어 있다.
그러니 화단과 텃밭은 가방을 두고 갔던 것으로만 기억된다.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늘 알고 있었지만
이리 심각하게 왜곡되어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제 일어난 일이 뇌에 딴 생각하며 한 무의식적 행동은 새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가 지난 일을 모여 다시 상기할 때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이 벌인 일도,
사람에 따라 순서와 일어난 일이 다른 경우가 많다.
사람은 늘 자신의 방식대로, 어쩌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조작하고, 만들고, 왜곡한다.
그러니
어떤 것도 참이라고, 나의 기억이 늘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일이다.
 
 

'주절주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와 연인의 차이  (0) 2025.05.20
고독한 나무에 끌리는 이유  (0) 2025.04.01
집 안으로 봄을 들이다.  (0) 2025.03.30
우리는 왜 진실 앞에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0) 2025.03.30
봄 꽃  (0)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