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변호인>을 보는 동안 희한한 동시상영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가 단무지를 가져오지 않은 중국집 배달 소년에게 “까묵었으면 까묵었다고 이야기해라” 하며 나무젓가락을 가를 때, 돈 주고 사람 써놓고도 누구보다 많은 이삿짐을 나를 때, 그리고 법정에서 “인정해라, 인정하란 말이다!” 하고 고문경관을 향해 품위고 나발이고 고성을 내지를 때 관객의 뇌리에는 ‘노무현’이라는 또 한편의 필름이 돌아간다. 분리하기 불가능한 두 ‘영화’의 중첩은 관객을 울리는 한편 <변호인>에 대한 영화적 판단을 망설이게 한다. 역사가 세워놓은 이중의 스크린. 그것은 1996년 데뷔 이래 한국영화의 등줄기를 고스란히 등반해온 송강호라는 배우에게도 전에 없던 여행이었을 것이다. 아프고 어두운 사건을 다루지만 <변호인>은 역설적으로 인간 노무현이 가장 반짝였던 시절의 재연이다. 뒷날 “내 이름은 더럽혀졌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버렸다”라고 뼈아프게 스스로 적었던 정치인의 화양연화가 여기 있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절체절명의 명제였던 사람이 처음으로 부끄러움에 눈뜬 나날의 혼란과 고통, 기쁨은 송강호라는 두터운 연기자가 가진 모든 기교와 근육을 빌려 되살아난다
(글) 김혜리 vermeer@cine21.com
(사진) 손홍주 lightson@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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