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델 베리 장편소설
- 신현승 옮김
- 산해 출판
- 2005년판

- 미국의 농부이며 시인이자 작가, 그리고 현대문명의 비판자 중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 중 하나로 소개되는 저자의 이 소설은 아주 특이하다. 그는 작은 마을 이발소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 곁에서 더불어 살다가 간 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1차세계 대전에서, 1930년대 대공항을 거치고 세계2차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거쳐, 1980년대 이후의 기업농 시대에 이르는 농촌공동체의 변화의 시대상과 함께 전기형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 주인공 요나 크로우는 4살 때 부모를 여의고, 외할아버지의 여동생인 코디 아주머니 집에 입양되어 살다가 10살에 다시 그 양부모 마저 세상을 떠나고,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굿세퍼트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제법 좋은 학과성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이 신학을 전공하다 대학을 튀쳐나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발소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
담담한 이야기 속에 작가의 철학과 주제(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시대와 인간. 공동체의 의미, 세대간의 차이, 문명과 인간의 삶 등등... ) 가 잘 드러나 있으며, 문학성 또한 우수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하는 질문과 함께 현대 문명 속에서 찌들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대비되어 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대대로 이어져 온 마을 사람들의 기억이 곧 마을의 역사인,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강변 마을 포트윌리엄, 그 곳의 간판도 없는 이발소에 찾아온, 평생을 근면과 성실로 살아온 사람, 젊은 세대에 밀려나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이들, 헛된 이상만 좇다 남과 자신을 속이며 파멸을 향해 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을 보여준다.
강한 개인들의 나지막한 반란을 통해 현대자본주의의 삶이란 '새로운 노예제도'에 불과하며,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과감하게 떠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는 작품. ' 이라고 소개된 책소개 글에선 소개하고 있다.
<책속으로>
- 새로운 슬픔이 찬아오면 대기를 채우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방안은 그것으로 가득찼다. 모든 장소들은 그 자체로 부상자와 사망자와 실종자들이 이제 우리 주위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의 시간과 장소는 영원히 남는다. 시간만 더해질 뿐이다. 시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슬픔과 슬퍼하는 자는 그저 인내할 뿐이다. (p.197)
- 이것은 신발 속으로 뛰어나온 못대가리와 같은 실망이었다. 완전히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실망 말이다.(p.203)
- 우리는 궁극적으로 과거의 모든 가족노동과 이웃간의 분업을 해체할 때까지 이런 과정이 점점 가속화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새로운 농사법은 땅과 생물과 이웃에 의존하는 대신 기계와 연료와 온갖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곧 은행대출에 의존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농민들은 이런 구매와 차용금이 소규모 농장에서의 삶을 향상시킨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조만간 많은 소농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그대신 점점 더 규모가 큰 대농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농부들이 점점 고향을 떠나가고 포트윌리엄의 농장들이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처럼 철따라 옮겨다니는 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머지 않아 닥쳐올 터였다. (p.240)
- 흔히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위신을 얻으려고 많은 외로움을 감수하는 법이다.(p.254)
- 분노와 경멸과 증오의 감겅은 마른 잎에 붙은 불처럼 빠르게 서로의 마음으로 옯겨진다.(p.271)
- 증오는 성공에 이른다. 이 세상은 증오에 충분한 수단을 제공한다. 증오는 언제나 명분을 찾아내며 시간을 파괴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전쟁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신성한 것으로 정당화되고, 온갖 세속적인 승리의 수단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세상에 항상 존재하는 전쟁, 즉 지옥 그 자체는 끝없는 시간의 산물, 빛이나 희망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시간의 산물이다.(p.321-322)
- 관리들은 교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하그레이브로 보냈다. 이것은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와 생산량을 지향하는 경제논리를 교육에 그대로 적용시킨 교육위원회의 결졍이었다. (중략) 하지만 폐교조치는 공동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동체에 결코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겼기 때문이다. (p.360)
- 우리는 평화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마을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그 마을을 파괴하고 있었따. 우리는 아이들을 두려움 없이 평화로이 잠들게 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조국애'를 명분으로 이국땅에서 강간과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잔인하고 몰인정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세상의 오랜 질병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