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휴 벤슨 장편소설
메이븐 출판
2020년판

우애가 자비를 몰아냈고, 만족이 희망을 몰아냈으며, 지식이 믿음을 몰아냈다. (p. 197)
복잡하게 얽힌 삶의 거미줄을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한 가지 요소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지적인 것일 수도, 예술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삶의 초자연성이 명백히 보인다. 인본주의가 종교라면 인간 본성의 반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진실이 된다. 열망과 슬픔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열망과 슬픔을 경험적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지언정 받아들이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전부 하나가 되어 완벽해진다. (p.213)
프란체스코 교황이 두 번이나 추천한 책이라고 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1984>>, <<멋진 신세계>>,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에 큰 영향을 준 숨겨진 걸작 이라고 책소개 되어 기대를 많이 가졌나보다.
하지만 이 책은 카톨릭 신부가 쓴 소설이어서 다분히 종교적인 색체가 짙은 ‘디스토피아’소설이다. 세계가 전쟁이 없이 하나로 통일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신흥종교가 사람들을 사로잡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07년에 러시아 혁명의 격변기와 공산주의의 대두, 막시즘의 확산과 니체의 ‘신은 죽었다’ , 인본주의의 팽배 등의 세계적 기류하에 종교적 신앙으로부터 사람들이 멀어지는 배경 속에서 카톨릭 신부였던 벤슨은 신앙이 없는 세계지배와 미래사회에 대한 크나큰 우려를 이 소설로 이야기한다.
카톨릭과 개인독재에 의한 우상숭배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톨릭을 종교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의 생소함과 거부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으며, 소설 속의 상황에 대해 많은 논쟁거리를 재공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세계가 몇 개의 대륙으로 통일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을 때 꼭 독재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소설의 시대상의 반영이므로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미래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그 우려가 기우였음을 안다. 이미 막시즘이 붕괴했고, 러시아 조차 공산주의를 버렸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정신적인 이념과 지주를 잃어버렸을 때 또 다른 우상이나 지도자를 바라고 숭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지금도 곳곳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종말론이 우세하며, 사람들이 신흥 종교에 몰입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러나 디스유토피아적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종교적인 면 하나에만 국한되어 카톨릭 핍박이라는 문제에만 집착해 있다는 점에서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래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상상력 또한 <<1984>>나 <<멋진 신세계>>에 비해 부족하고 왜 사람들이 평화에 열광하고, 인본주의를 가지면서 그 사회를 아름답게 꾸려나가는데 노력하지 않고 개인 우상숭배에 집착하게 되는지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또한 다분히 유럽 중심주의이고, 하나의 종교에 머무르는 문제인지라 미래사회의 정신적 붕괴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기에는 많은 반발감을 불러일으킬 요서가 충분하다는 점이 이 소설의 한계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한 종교를 탄생시키고, 우상숭배의 과정에 그토록 빨리 빠져들 수 있는지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종교를 통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세뇌하고 지배하게 되는지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 인지라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자신을 그 테두리 안으로 집어넣어야만 안정감을 갖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성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기에 신이 필요한 것인지도. 그렇다고 나와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배타성과 폭력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는데,.....우리가 미래에 대해 늘 긍적적인 그림만 그릴 수 없음은 인간이 가진 이런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바벨탑으로 현재도 신에게 도적하고 있으니, 아마도 교황성하께서 이 책을 추천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