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 파커 J. 파머 지음
- 김찬호, 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출판

노화라는 중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나이듦에 협력할 때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한 환희에 찬 경험을 들려주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스물네 편의 에세이와 여러 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여든 살의 저자는 나이듦에 대해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를 통해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비추는 프리즘을 바꿔가면서 각자의 경험에 그런 작업을 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것들을 탐구하고, 젊은이들에게 창조적으로 관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영적인 삶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에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마음속으로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써 하는 정도이든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또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이뤄지는 내면 작업의 중심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죽음 이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답한다. (북소믈리에 한마디에서)-----
사회 활동가이자 영성 교육자로서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해온 파머는 세 번에 달하는 극한 우울증으로 극에 달했던 혼미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과 어둠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빛과 함께 그림자를 끌어 안음으로써 우리 삶이 온전해진다’고 그는 고백한다
누구나 자기 삶을 ‘쓰고’ 있다.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면 삶은 그제야 의미의 그물망으로 들어오고 더 단단하고 응집된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자기 삶에 대한 작가적 구성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쓸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있을까?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라고 말했다. 파머는 이 문장을 수정한다.
“나의 지옥은 대학 학위와 재정적 안정성을 가진 50세 이상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즉 나 같은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는 다양성이 삶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온전하게 잘 사는 삶의 기본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종,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등에서 ‘타자성’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재생renewal을 일으키지 못할 거라고 파머는 말한다.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 생기 넘쳤던 미국은 뒷걸음질하면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모든 것은 반갑게 맞아들여야 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 담론의 출발점은 바로 타자의 낯섦을 끌어안고 자기방어를 해제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때론 불쾌하고 기이하며 무서운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타자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닌 이는 ‘환대’의 결과가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지만, 실은 당신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버리고 가구를 몽땅 내가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곤란한 상황, 감정들은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전체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 중 하나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타인을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면밀히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저자는 백인의 특권과 거기서 비롯된 불의 및 비인간성에 자기도 모르게 공모했던 것, 백인우월주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그 독성에 오염돼왔던 것을 고백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서 타자성을 보는가. 그것은 자기 우월감이다. 그것은 올바른 렌즈를 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오만은 다른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한다.
---(책 서평 중에서 발췌)------
이 책의 소개글을 쓴 올해 일흔이 된 소설가 김훈은
“젊었을 때는 나와 세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있었다. 이 경계선은 내 자의식의 성벽이었고, 그 안쪽이 나의 자아였다. 나는 이 성벽 안쪽에 들어앉아서, 이 세상을 타자화해가면서 잘난 척했다.
늙으니까 이 경계선이 뭉개져서 나는 흐리멍덩해졌고, 나인지 남인지 희부예졌는데, 이 멍청한 시선으로 나는 나에게서 세상으로 건너가려 한다.”
라고 하면서 “이 책을 읽으니까, 함께 수다 떨기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말이 길어졌다.”고 소개한다.
<책속으로>
부셔져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 마음의 변형적인 힘에 대해 생각한다. 부서져 열린 마음은 영적 연금술의 장소로서, 바로 그곳에서 어려운 경험의 불순물이 지혜의 황금으로 변형된다. (p.200)
온전함이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서짐을 삶의 총체적인 부분으로 끌어안는다는 뜻이다.(P.31)
‘붙잡고 싶은’ 욕망은 결핍과 공포감에서 온다. ‘나를 내어주고 싶은’ 욕망은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에서 온다. 바로 그것을 향해 나는 시들어가고 싶다.(p.47)
폭력은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할 때 생겨난다.(p.76)
때로 우리는 그 폭력을 스스로에게 가하기도 한다. 탈진으로 이어지는 과로와 여러 형태의 약물 남용이 그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폭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사합니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성소수자 혐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함으로써 고통을 줄이려는 이들에게서 종종 나타납니다.
고통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로도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중략)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입니다. 한데 그들의 마음은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입니다. (...) 마음이 부서질 때 수류탄 파편이 아닌 더 큰 사랑의 능력으로 부서질 것입니다.(p.77)
부셔져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 마음의 변형적인 힘에 대해 생각한다. 부서져 열린 마음은 영적 연금술의 장소로서, 바로 그곳에서 어려운 경험의 불순물이 지혜의 황금으로 변형된다. (p.200)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 본 적이 없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진정한 자아로,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식으로 여기에 존재했으며, 현실에 치열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있을까.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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