それでも、生きてゆく
- 일본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 일본 후지 TV (2011)
- 11부작
- 주연 : 나카야카 에이타(히로키 역), 미츠시마 히카리(하바타 역)
<내용>
1996년 여름, 후카미 히로키의 동생 아키가 히로키의 친구인 소년 A(미사키 후미야)에게 살해 당한다. 이 사건으로 후카미의 가정은 붕괴되었고, 히로키는 아버지와 낚시터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한편, 소년 A의 가족은 이웃들의 수근거림과 괴롭힘으로 이사를 되풀이 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어머니와 이혼하고, 자식들의 성(姓)을 어머니의 성으로 바꿔준다.
그리고 2011년 여름, 히로키 앞에 한 여성이 나타난다. 바로 소년 A의 동생 후타바. 그러나 후타바를 알리 없는 히로키는 후타바를 자살 하려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자살을 막기 위해 살해 된 동생의 이야기를 꺼낸다.(1편의 시작)
-------------------------------(위키백과에서)----------------------------------------
"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로 소개되어 있는 드라마.
그런데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잃지 않은?...'이라는 말이 이 드라마에 맞는지 보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 슬픔을 극복하고'라기 보다는 '상실과 아픔'에 관한 드라마라고 해야 맞다.
' 상실의 아픔'은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어느 한구석, 어느 한부분에 살아남아, 살아가면서 울컬울컥 솟아오른다.
그래서 우린 ' 어느 상자에 담아두고' 결코 열어보려 하지 않고, 꼭꼭 숨기면서 산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져야 하는 권리'까지는 빼앗을 권리 또한 그 누구에게도 없다. 자기 자신 까지도.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늘 '그래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자를 열어 슬픔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 ,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분은, 그래서 조금은 편안하고, 조금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다고.
'이틀은 울고, 삼일은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이면 좀 넛지 않을까?.."삼일은 울고, 이틀은 웃지 못하고 참는' 그런 삶보다는.
아픔은 가장 아픈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가장 아픈 사람이 , 가장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다.
'피해자의 가족이나, 살인자의 가족이나 똑 같은 아픔을 겪고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소년A엄마의 대사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향해 비난을 던질 가격이 없음을 말해준다.
비난하지 않아도 아프니까. 행복하지 않으니까
손에 커다란 못을 박고 살아가는데, 가슴에 가시를 박고 살아가는데
건들지 않아도 스스로 늘 아리고 아픈데.
'마음은 인체의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주어질 때 생기는 것이 마음'이라는 드라마속의 대사는
여운을 남긴다.
소년A는 누구로부터 그 마음이라는 것을 받지 못해 마음이 없다.
그래서 살인을 하고도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텅빈 공허 안에서는 누구를 향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받지 못했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다. 내가 먼저 주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생긴다.
그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던, 받아들이지 않든, 나에겐 이미 마음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그 또한 희망이 있지 않은가?
누구도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존재 자체가 주어졌기 때문에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눈물을 주고, 사랑을 주면서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저 살아가면서 그러면 그만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 존재자체를 빼앗을 권리는 없고, 행복해질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
가족은 서로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수도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물론 동양의 가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가문을 중시하고, 원수가 된 가문끼리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보면
꼭 동양적 굴레라고만은 볼 수 없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용서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가족 구성원으로 부정하고, 배제하는 일은 형식적으로는 가능하겠으나,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꼭 모든 것을 가족이 함께 고통으로 짊어져야만 했는지...답답한 현실이다.
늘 운동화만 신던 후타바가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라는 것을 하면서
처음으로 신은 샌달이 처연하게 아른거린다.
이 드라마는 너무도 아프고, 너무도 슬퍼서.
보는 동안 그 아픔이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져 눈물이 자꾸 흐른다.
그래,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용서하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용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아무 일이 없었다면 서로를 사랑하며 알콩달콩 살 수 있었으리라 과거를 생각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미래를 함께 이야기 하며 살아가자.
비교하지 않으면서. '오늘도 또 하루의 해가 뜨고, 또 하루가 시작됨'을 기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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