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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김종직의 유두류록 길을 따라

by 비아(非我) 2024. 6. 30.

- 2024. 6.20

 

- '궁금해 지리산- 함양'프로그램에 따라 이번 달에는 '김종직의 유두류록길'을 함께 걸었다.

 

- 길안내 및 해설 : 류정자 선생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2020.삼우반)>의 저자

(20살 때 집에 있는 김종직 선생님의 '유두류록'을 보고, 지리산 탐방을 시작하여, 산행기에 언급되어 있는 길을 찾아 다니시기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그 오랜 기간 천왕봉을 수차례 왕복하시면서 언급되어 있는 길과 사찰을 찾아 내신 대단하신 분이시다.

김종직이 언급한 절이 4개인데 이 곳들을 찾아내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 대단한 집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료에서 언급하신 절터의 모양과, 바라보이는 풍광, 그리고 바위모양 등을 낱낱이 살펴 찾아낸 '유두류록'길을 우린 설명을 들으며, 안내에 따라 쉽게 오르게 되었으니,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오른다.)

 

- 김종직 (1431년 6월~1475년 8월 19일): 조선 초기 문신, 성리학자. 1470~1475년 함양군수. 

- 유두류록: 1472년 음력 8월 14일~18일까지 5일간의 지리산 탐방록 

- 오늘의 산행 : 적조암 -> 노장대(독바위 )->적조암

 

- 적조암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으나, 가파른 외길이어서, 맞은편에서 차를 만나 서로 피해주느라 아주 애를 먹었다. 적조암은 산 중터에 있다.

적조암 주차장
적조암

- 구불구불 외길을 아슬아슬하게 자동차로 올라, 마주한 적조암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작은 암자일줄 알았는데...

 

적조암 앞을 지나

 

마지막 민가 옆길로 숲길로 들어선다.
류정자 선생님(출입금지 간판을 보고 깜짝 놀라 못가는 것 아닐까. 했는데, 선생님이 이 길이 뜻 깊은 길이라고 산림청에 건의하여, 출입가능해 졌다고 하신다. 휴..다행이다)

 

-- 이 길은 국립공원 천왕봉 산행코스로 개발공사 예정이어서 곳곳에 빨간 표시가 붙어 있다. 산행길이 개발되고 놓이면 좀더 편하게 오를 수 있겠다. 공사가 끝나고 정식 개방이 되면 다시 와봐야 겠다.

- 적조암에서 노장대(독바위)까지 야자매트를 깔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조릿대가 우거져서 길찾기가 쉽지 않다.

 

한양군에서 오르는 지리산 위치지도(올해초부터 개방은 되었으나, 아직 산행로가 정비가 되지 않았으나, 정비된 후 오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키 높이의 조릿대 밭을 헤치고 가야 한다.

 

- 얼굴을 자꾸만 때리는 조릿대를 헤치고 산을 오르니 금낭화 군락지가 나왔다. 옛날 운암마을 터로 경남인민유격대 대원들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빨치산 이야기로 이어지고, 마지막 빨치산인 정금덕이야기까지 듣게되었다.

구빨치 유격대인 경남인민유격대는 법화사에서 결성되어 1947년 이곳으로 1,200명이 옮겨와 머물렀다고 하는데,

지리산에 얽힌 아픈 현대사이다.

 

 

- 산행로로 개발할 곳곳에 빨간 표시가 붙어 있어 길안내가 되었다.

500년된 돌배나무 (크기는 아래 사람들의 모자크기와 비교하여 가름하시길)

 

- 기록에 의하면, 이 돌배나무가 있는 곳까지 말(노새?)을 타고 오셔서, 이 곳에서 말에서 내려 하인들을 돌려보내고, 걸어 천왕봉을 향해 올랐다고 적혀 있다.

- 돌배로 담근 술이 아주 몸에 좋아서 돌배를 따러 오는 주민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무가 너무 높아서 돌배가 열려 있는지 보지 못했다.^^:

 

- 지리산은 바위가 그다지 많지 않은 산인데, 곳곳에 있는 거대한 바위들 밑에 빨치산들이 식량을 저장하였다고 한다. 산길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면 삼각바위와 굴이 있는데, 발견당시 박쥐가 날아다니고, 곡식이 삭아서 발이 빠질 정도였다고 하니, 6.25 당시의 빨치산들의 항거와 소개 작전 등을 생각해 보며 현대사를 되돌아 본다.

 

- 돌배나무를 지나고, 바위와 작은 굴들, 빨치산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지장사 터와의 갈림길.(왼쪽으로가면 지장사 터, 우린 다음 절터를 향해, 오른쪽으로)

 

- 공터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선생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바위 위에 빨간 자국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항아리와 그릇 조각들 : 이 곳에 살 던 사람들이 너무도 빈대가 극성이어서, 이곳을 떠났는데, 바위의 빨간 자국들이 빈대의 핏자국이라고 한다 ㅎ ㅎ' 전해져 내려오는 설이 참 재미있다.

' 빈대 잡으려 초가 삼칸 태운다' 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모양이다.

 지리산에 있던 350개여개의 절들이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사라졌는데, 그 보다는 빈대 때문에 절들이 소각되었다는 설이 정말 재미있다.^^

 

지장사 절터를 지나 오르는 길을 가파른 길들이 시작된다.
거대한 바위 근처로 사람들이 가보길래 호기심 많은 나도 얼른 따라가 올라가 보았다.
바위 사이에 긴 굴이 있고. 안쪽이 꽤 넓다. 아주 어두워 사진에는 입구만 보임
환희대

 

- '유두류록'에 의하면 '환희대란 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는 천 길이나 되는 데,, 금대사, 홍련사, 백련사 등 여러 사찰을 내려다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선생님은 이 바위에 올라 세개의 절이 보이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그 것을 통해 '유두류록'의 산행길은 이 길이었다고 한 번 더 확인하셨다고 하신다.

 

그 사이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아름다워 한 장.
지나가는 바위에 새겨진 이 자국이 마치 바위조각을 들어내고 안에 보물을 숨긴 후 다시 막아 놓은 자리 처럼 보여 신기했다.
절벽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무너진 나무 밑을 기어보기도 하면서 간다.
아마도 선열암 터

-' 선열암에 가보니, 암자가 높은 절벽을 등진 채 지어져 있는데, 두 샘이 절벽 밑에 있어 물이 매우 차가웠다. '(유두류록)

절벽아래 바위 동굴 안에 샘이 있었다, 어두워 사진에 나오지 않았는데 기록과 일치하여 매우 놀라웠다.

 

- 바위가 지붕 모양을 하고 있어 비를 피하기 좋고, 샘도 있어, 노루 발자국이 나 있었다. 누가 비를 피하고 갔는지, 모닥불 자국도 있고.

 

- 우린 이 절터의 넓은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 두 패로 나뉘어서 독바위까지 다녀올 사람과 다시 하산할 팀으로 나누었는데, 난 처음에 독바위 가는 팀에 따라 가다가, 출발할 때 등산화 끈을 묶는 사이에 앞 팀이 가버려서, 일행을 노치고, 할 수 없이 하산하는 팀과 다시 내려 왔다. (억울 ㅠ ㅠ)

독바위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아주 가파르다. 전문가가 아니면 길을 찾지 못함 ㅜㅜ

 

- 아래 사진은 독바위에 다녀온 팀이 올려준 사진이다. 나중에 정식 등산로가 개방되면 다시 와야 겠다.

- 독려암

 

<다시 되돌아 내려오며>

우린 온 길을 되집어 되돌아 내려왔다. 절터에서 조금 다시 내려와 독바위(천왕봉 방향)가는 길과 하산길이 갈린다. 아직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치고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난 그냥 하산팀과 합류하여 내려왔다.
다시 대숲을 헤치며 하산(앞이 잘 안보여서 갈림길에서 일행을 노치면 길을 잃기 쉽다

- 내려오는 길에 본 나무(정말 특이한형태의 껍질을 가지고 있어)/ 나무위의 새가 우리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 처다보고 있어서, 혹시 어디가 아픈가 하고 한참을 서로 바라보았다.

 

처음 입구의 출입금지 판 까지 오면 하산 끝지점이다.

 - 주차장의 능소화

 

- 안내와 설명을 해주신 류정자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차를 타고 꼬불꼬불 다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