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저.
-자음과 모음 출.
-2012년 11월.
소설의 화자는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인데
중인의 서열로서 신분의 한계를 알고 세상을 떠돌게 된 한 이야기꾼 사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줄거리가 이어진다.
화자의 추적을 통하여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재물주, 연희 대본가,
그리고 나중에는 천지도에 입도하여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꾼의 일생이 드러난다.
엄격한 신분제도로서 유지되는 유교적 세상에서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놀랄 만한 선언을 했던 동학의 출현은 그야말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말했던 체제우와 그러한 사상을 평생 동안 도망 다니며
실천하고 퍼뜨렸던 최시형 역시 '큰 이야기꾼'이었다.
지방마다 남아 있는 동학의 흔적과 대소 접주들의 행적이며 일화들을
모아 읽다보면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의 이야기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전기수가 책 읽어주는 이었다면
강담사는 그야말로 재담꾼이다.
양자는 때와 장소에 다라 서로 겹치기도 하고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그들은 결국 이맘때의 작자 미상이 수많은 방각본 연패 소설의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각자의 당대를 어떻게 살아냈으며
어떻게 줄어갔는지 알 길을 없으나
이들이 남긴 수백 종의 연패 소설과 판소리 대본과 민담,
민요 등등은 눈보라 속을 걷는 나에게 먼저 간 이가 남긴 발자취와도 같았다.
이들과 단절되어 제국주의의 침입과 함께 이식문화로 시작된 한국 근현대문학의
원류를 더듬어 이제 울창한 우리네 서사의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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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조-소리의 기본이라, 한밤중에 달이 중천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것처럼,
또는 한들바람이 잔잔한 수염을 스쳐가듯이 맑고도 시원한 소리다.
우조-맑고 격하고 장하고 거세며 엄한 가락이니라, 사납게 들어 올리기 때문에 맑고 장하고 격동하여
한말 이나 되는 옥이 부딪쳐서 깨어질 때에 옥 부스러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과 같도다.
계면조-처절하고 슬픈 소리이니 아득하게 멀고 숙연한 가락이다.
다만 계면조는 다시 세단계로 나눌수 있으니
(1) 평계면은 평조에 가까운 잔잔한 애조
(2) 단계면은 슬픔이 아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슴속에 쌓여 있는 울적함
(3) 진계면은 슬픔이 북받쳐 통곡으로 터져 나온 소리
그리고 여향이 있으니 들보 위의 티끌이 떨리고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멈추게 하는 가락이다.
새벽의 먼 산사에서 마지막 타종 소리가 끊길 때와 같도다.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의 표현력에 그가 참 이야기 꾼임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글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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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와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불승들 처럼 내마음의 집착을 휙 베어낼 수야 없겠지만,
내 몸이 먼저 떠나면 마음은 타래에서 풀린 실처럼
서서히 따라오다가 모르는 곁에 어디선가 툭 끊어져
나가게 될 것 같았다. 혹시 누가 알까,
그리가 끊어진 실의 끄트머리를 잡고 내가 간 길을 되집어
돌아오게 될지,
(화자의 이신통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어쩌면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슴이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