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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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가 박경리의 생생한 육성이 살아 있는 결정판!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되었으며,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은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민중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국내를 넘어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국외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라 하겠다.
1969년 <현대문학>에서 처음 시작한 『토지』의 연재는 여러 매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박경리는 『토지』의 자리를 1972년 <문학사상>으로 옮겨 2부를 연재했고, 1978년 다시 <한국문학>과 <주부생활>에 3부를 연재했다. 4부는 1981년 <마당>에서 연재되었는데, 1983년부터는 <정경문화>에서 연재의 뒤를 이었다. 작가는 1992년 9월부터 <문화일보>에 『토지』의 5부를 연재하여 1994년 8월 26년간의 집필 끝에 전 5부를 완결 지었다. 『토지』는 연재 도중에 문학사상사,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등에서 출간되었으며, 완간 이후 솔출판사와 나남출판사에서 전권이 출간되었다.
--------------(교보문고 책소개에서 펌)----
4부까지 나왔을때 토지를 읽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대하소설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이 그 시대상에 따라 다른 의미로 독자에게 와닿을 수도 있지만
읽는 이의 나이에 따라서도 그 맛이 달리 읽혀짐을 새삼 생각했다.
동학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같으나
젊었을 때 읽고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최서의와 길상의 사랑, 애증의 관계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었는데 (아마 드라마 탓도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을 다시 읽어 보니 서희와 길상의 애증은 아주 미세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소설속에서 크게 다루어 져 있지도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음...그렇군...
(아마도 공간을 연결하고 관계를 맺게 해주는 대하소설의 중심주체가 '평사리'에 있고, 이들 관계의 중심에 '길상과 서희'가 놓여 있기 때문일 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평사리 마을의 주민들이었고, 그들의 3세대에 걸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질기고도 모진 관계들이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얽혀, 일제 강점기의 민중들의 삶과,
지식인들의 고뇌, 등등에 중점을 두고 쓰여진 소설이다.
이미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내용이나 이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왈가불가 논하지 않아도 되는 책인지라......
5부까지 21권의 책을 읽는데는 다소 인내가 필요했던 이유는 젊었을 때 가졌던 이상과 역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당시 정치적 상황 들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도 하여 나에게도 그 절실함과 아픔이 이젠 멀게 느껴진 탓이리라.
또한 나의 지나온 진한한 삶이 소설 속에 그려진 여러 삶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이 지루하게(?) 아니면 아픔없이(?)읽게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시대도 그 만큼 멀리 , 나이를 먹어버린 탓이겠지.
이 방대한 소설을 집필하신 박경리 선생님께는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며
원주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집필하신 생가와 지리산 평사리 마을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추신)
"많은 대하소설들이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운다, 민중은 몇몇 예회적인 개인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통해 좀 더 잘 드러난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넷이 민중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대하소설은 적절한 형식이 될 수 있었다. 역으로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민중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현실을 넓고 깊게 그리는 데 민중들의 일상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중들에 대한 관심이 대하소설의 창작으로 이어지고,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민중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다고 할 수도 있다.
오늘 날에도 여전히 민중은 역사의 주체일까?"
(정영훈,「대하 역사소설은 여전히 가능한가」. 《싸우는 인문학》.pp.13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