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넬 차페크 장편소설
-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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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카렐 차페크는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차페크는 흔히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도입하고 과학 기술의 오용과 통제되지 않는 이윤 추구를 풍자한 디스토피아 희곡 (1917)를 발표한 이래 마지막 작품인 희곡 <어머니>(1938)를 쓰기까지 그의 창작 기간은 20여 년에 불과했지만, 작가 외에도 언론인, 평론가, 연출가, 사진작가로서 다양한 재능을 보이며 철학적 깊이와 해박한 지식을 보여 주었다.
< 평범한 인생>은 차페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죽음 앞에서 자신의 <평범한 인생>을 돌아보며 새로운 <자신들>과 조우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망한 한 철도 공무원이 자신의 삶에 대해 남긴 기록을 통해, 한 개인의 삶 속에 숨겨진 다양한 자아들을 조명하며 정체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소설 중 하나로, 세 소설은 각자 독립적인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평범한 인생>은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서술로 삶에 대한 물음을 진솔하게 녹여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알라딘 책소개에서)-----------------------------------------------------------
"삶에 대한 해석과 예찬을 다루고 있는 차페크 소설 『평범한 인생』은 <우리>라는 범부 안에서 서로를 포용할 때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라는 평범함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삶의 오마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송순섭 옮긴이 해설 중에서)
<책속으로>
1-3. 평범한 자아/ 억척스러운 자아/우울증 자아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이일은 하고 저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어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그처럼 세 개의 상이한 본성이었지만 서로 불화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타협했고,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기도 했을 것이다.(중략)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낭만주의에 관한 것이다.
(p.202)
4. 낭만주의 자아
우울증 환자인 자아의 동료였다고나 할까. 그는 우울증 환자가 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보상하는 데 아주 필요한 인물이었다.(p.202) 모험을 좋아하고 기사와 같은 자아를 덤으로 지니고 있다.
5. 극도의 고독상태에서 어둠 속에서 은밀히 조금은 저주스러웠으며, 독자적인 존재, 그것은 나의 자아도, (그 낭만주의자 같은 ) 어떤 존재도 아니었고, 그저 어떤 것일 뿐이었다. 저급하고 억눌려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인성을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이나마 자아을 형성했던 것들은 모두 그것을 꺼렸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나의 자아와 대립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몰락이나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체를 볼 수 없는 존재였고, 항상 어둡고 은밀하게만 경험될 뿐이었다. 마치 짐승의 악취가 나고 자물쇠가 걸린 더러운 판잣집에서 그랬듯이.(pp.203-204)
6. 시인 : 이 시인이 나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다른 어떤 자아보다도 그 저급하고 비밀스러운 존재와 상관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시인의 내면에는 보다 높은 뭔가가 있었지만, 그는 나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 시인은 뭔가를 해방시키려는 듯, 그것을 어떤 인물로 형상화 하거나 또는 인물 이상으로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신적인 잡지나 기적이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왜 나는 날개짓하는 천사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걸까? 어쩌면 저주받은 그것이 구원의 천사와 씨름을 하는 데, 때로는 그 천사가 더러운 구덩이에 빠지고, 때로는 사악하고 저주받은 것이 정하되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어둠의 틈새를 통해 강하고 눈부신 빛이 들어와, 그 빛의 아름다움이 그 더러움조차 어떤 강렬한 것으로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구원받지 못한 것도 내 안에서 영혼이 되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게 영혼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저주받은 것은 저주받은 채로 남았고, 나의 공인되고 정당한 자아와 아무런 상관을 맺지 못했던 시인은 저주를 받았다. 다른 이야기들 안에 그 시인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내 인생 목록이다.(pp.204-205)
7. 그러나 그 일은 아마도 내면에 있는 모든 자아들을 결합시키는 유년기 때와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제동수와 검표원과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것 같다. <얘들아, 친구들아, 우리 함께 노래를 부르자!> 나는 평생 외톨박이였다. 그 일을 할 때 가장 멋진 점은 남들과 하나가 된다는 것과, 동료들에 대한 남성적인 사랑이었다. 혼자 이룩하는 영웅 행위가 아니라, 그 근사한 무리에 속한다는 기쁨이 관건이었다. <철도인 동지들,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줍시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와 같은 기쁨을 느꼈고, 참여했던 모두가 그런 느낌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의 유년기에 결핍된 것이 충족되었다. 나는 더 이상 톱밥의 울타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p.209)
8. 성당 문가에 거지가 되고 싶은 욕망,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고, 가난하고 혼자가 디어 그 상태에서 독특한 기쁨이나 거룩한 느낌을 가져 보고 싶다는 동경, (...) 세상 모든 일이 무상하게 느껴져 슬픈 느낌이 들고 체념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모든 일의 무상함을 깨달았다. (...) 인간은 왜 늘 그런 일을 하는 건지, 그저 존재하면서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그것은 아주 조용하고 현명한 죽음이다. 나는 그게 나름대로 삶을 부정하는 행동이었음을 알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 행동은 다른 어떤 삶의 연고나성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삶은 단지 존재했었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게 허무한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으니까.(pp.210-11)
어쩌면 우리 각자는 세대에서 세대를 통해 불어나는 사람들의 총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없는 자아의 분화가 두려워 우리는 분화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우리를 단순하게 해줄 어떤 집단 자아를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중략)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의 집합처럼 다양성으로서 태어나고, 성장과 환경에 의해 비로소 우리로부터 하나의 인간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p.222)
-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운명들이 이 가능한, 태어나지 않은 형제들의 집합이 아닐까? (...) 내가 단순히 내 삶으로 취했던 것이 우리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오래전에 살다가 죽은 우리와, 태어나지도 않았고 단지 존재의 가능성에 불과했던 우리의 삶 말이다. 맙소사, 이건 아찔한 생각이다. 아찔하면서도 멋진 생각이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삶의 흐름이 갑자기 내게 전혀 다르게, 한없이 위대하고 신비스럽게 보인다. 그건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얼마나 총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인가!
이제 여기에 우리 모두가 모여 모든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리 집안 모두가 모여 있다. (p.223)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니다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내가 너를 미워하더라도 난 네가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잊진 않는다. 나는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리라, 그이 멍에를 느끼고, 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에게 닥친 부당함에 대해 함께 괴로워하리라 내가 그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더 많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기주의자들을 배척할 것인데, 내가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돌볼 것인데, 내가 병자이기 때문이다 성당 문가에 서 있는 거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인데, 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나이다. (p.238)
이 자아는 도둑이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처럼 그 불빛의 반경 안에 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 너, 그리고 너! 너희는 그렇게 많고, 우리는 그렇게 많아 교회 축일에 모인 사람들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이 세상은 얼마나 늘어나는가! 세상이 이렇게 커다란 공간이고, 이렇게 찬란한 곳인지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