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트릭 화이트 장편소설
- 송기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확총서 165,166)
- 2021년판
- 배척과 소외를 이토록 치밀하게 그를 수 있다는 사실에 깜작 놀랐다.
우린 집단에서 소외될까봐 스스로 방어벽을 치고,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척과 외면하곤 한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채.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가자가에 못박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현 시대에 또 다른 예수를 배척하고, 비난하며,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것을 아닐까?.
우린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말하기 좋아하며,
타인을향해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그러나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도 나약하다.
역사적으로 드러난 홀로코스트를 비난하면서
우린 '악의 평범성' 앞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한나 아렌트에 그토록 흥분하고 비난하는 지도.
너무도 슬픈일이다.
가장 밑바닥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만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부퉁켜 안기에는
그들 또한 너무도 나약하다.
그래서 글드볼드 부인의 모습이 우리에게 마리아처럼 성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이 시대는 또 다른 예수가 필요한 것이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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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그러나 기억은 또한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것들은 금실로 만든 가장 값비싼 커튼이 오래되어 넝마가 되듯 너덜거렸다. 거기에서는 언제나 회색 혹은 한밤처럼 검은 색깔의 나방들이 숨 막히는 가루를 흩뿌리며 쏟아져 나왔다.(1권 p.81)
“우정은 두 자루 칼이에요” 헤어 양이 계속해 말했다. “둘을 문지르면 서로를 날카롭게 벼릴 텐데, 종종 하나가 미끄러져 엄지를 벤단 말이지요” (1권 p.144)
“당신은 한 눈에 모든 걸 되다 보는 모양이죠? 우리 집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가득해요, 하다못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도 때가 되어야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거라고요.”
그 말에 유대인은 옷 속에서 몸을 뒤틀 정도로 즐거워졌다.
“숨겨진 차디크가 바로 당신일 줄이다!”
“뭐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각각의 세대마다 서른여섯 명의 차티크들이 있다고 합니다. 치유하고 해석하고 선행을 베풀면서 은밀하게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신령한 사람들이지요.”(1권 p.272)
그들은 함께 서서 어두운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구덩이 밑바닥에는 너무도 희미한 인광을 발하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는 레하 히멜파르프의 얼굴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보길-오,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이- 열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지의 얼굴을 한 타인들에게로 그의 시선을 유도하고, 그녀 자신은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두 눈에서 빠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는 자신의 손등 위로 흐르는 피눈물을 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구덩이로부터 차오르는 연민의 석회가 선 자리에서 그를 삼켜버렸다. 이제 환전히 혼자였다.(1권 p.295)
히멜파르프는 마치 제 가지조차 가누지 못하는 비참하고 볼품없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 바람 부는 언덕 위헤서 자꾸만 나약해졌다. 그는 덜컹거리는 상태였다. 반면에 말본새나 행동거지가 하나같이 모자란 그 퉁퉁한 여자는 풀밭에 묵묵히 놓인 한 덩이 바위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서 있는 동안 바람이 남자를 가르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여자의 몸에 부딪혀 쪼개졌다. (1권 p.384)
그때 건널목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 덩이 파도처럼 밀려가면서 고드볼드 부인도 한데 묻혀 실려갔다. 늘 끈질기기만 한 삶을 재개하느라 나머지 사람들은 몹시도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모자를 쓴 이 여인만큼을 거기에 떠밀리지 않고 가만히 표류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분명히 잠시뿐이겠지만, 시간의 물줄기를 초월해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모조리 눈물을 쏟아냈음에도 그 눈은 여전히 저 깊은 눈구멍 안에서 반짝거렸다. 초록빛 진홍빛으로 반짝이는 네온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뻗쳐 여느 때처럼 투실한 그녀의 얼굴을 차지하려 씨름했다. 빛과 어둠은 이따금 푸르스름한 자주빛을 짜내며 서로 부딪혔고, 그 빛이 검은 옷을 입은 저 느릿느릿한 형체를 흠뻑 졌셨다.(1권 p.509)
“모든 나쁜 것에는 가족같이 비슷한 점이 있고, 그것들은 쉽사리 눈에 띄어요” (2권 p.17)
헤어 양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분노 그 자체였다. 부당하다는 기분이 날것으로 솟아나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기억에서 해방된 적나라한 폭죽처럼 그것은 곧게 뻗어 오르며 한 송이 불꽃으로 타올랐다.(2권 p.19)
그의 순수함은 감미로웠으나, 정작 맛보는 이들로서는 쓰디쓰기 그지없었다.(2권 p.165)
그가 보기에 사그라진다는 것의 수수께끼를 간파할 수 있는 이들은 오직 한없이 소박한 영혼의 사람들, 혹은 너무 커져버린 육체의 외피를 벗어던지기 직전의 사람들뿐인 것 같았다. (2권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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