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 드라마
- 100분
- 개봉 : 2016.7.13
- 청소년관람 불가
- 감독: 장 마크 발레
- 주연: 제이크 질렌할
<내용>
“슬프게도…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이비스는 점차 무너져간다 “편지 보고 울었어요, 얘기할 사람은 있나요?” 아내를 잃은 날, 망가진 병원 자판기에 돈을 잃은 데이비스는 항의 편지에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느 새벽 2시,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캐런과 그의 아들 크리스(유다 르위스)를 만나면서부터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도시를 헤매던 데이비스는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망가진 냉장고와 컴퓨터 등을 조각조각 분해하기 시작하고 끝내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집을 분해하기로 하는데…
---------------------(다음 영화소개)---------------------------------------------------------
- 데몰리션읜 '파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완벽히 재거되어야 다시 생성 되는 감정'을 이 영화에서는 의미하고 있다.
-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어버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인간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초기 단계로 '부인'의 감정을 느낀다.
상실, 죽음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거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발현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양상으로 나나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서 데이비스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양상은 주변사람들이나 스스로 에게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던'것 처럼 보여져 모든 사람들이 비난하기 쉽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양상으로 사람을 판단하기에.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답답함을 같이 느끼는 이유는
주인공 데이비스 역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면서 행위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 상실로 인한 공허와 부정의 상태는
' 무언가에 문제가 생기면 완전히 분해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장인 어름의 말을 떠올리며
'파괴'의 형태로 나타난다.
'결혼생활' 자체를 부셔버리기 위해, 처음에는 냉장고를, 컴퓨터를 그러다 집 전체를 부셔버리는 '데몰리션'으로.
아내가 죽고 데이비스가 처음 한 행동은
병원의 자판기의 초코렛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항의 편지를 쓴다.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떨어놓지 못하는 데이비스는 항의편지에 쓸데없는 자신의 개인사와 아내의 죽음 등을 쓰면서
계속 항의를 빙자한 긴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편지를 받아보는 상대편에 나오미왓츠가 연기한 캐런이 있다.
캐런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캐런의 집에서 아들과 친해지는 과정 또한 파격적이다.
이들 둘은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공허감을 서로 맞대며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직면하길 거부하고, 자동적으로 방어벽을 형성하는 기질이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어쩌면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그는 편지글에 이렇게 적는다. "저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장인에게 말한다. "저와 아내는 서로를 사랑했어요. 제가 그 사랑에 무심했을 뿐이지요"라고.
'무심' '마음이 없다'는 뜻의 이 단어를 영어로 데이비스가 무슨 단어를 사용했는지
영어를 잘 몰라 자막을 읽는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참 대단한 용어라는 생각을 한다. '무심'......
어떤 사물에도, 어떤 행동에도 무심한 사람들은 어쩌면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는 사람의 표현양태일지 모른다.
우리는 표현되지 않은 속을 알지 못해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에 공허감을 느낀다. 데이비스의 아내처럼.그가 아내가 죽은 후에도 곳곳에서 아내의 환영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극구 부인했던아내에 대한 사랑을 직면했을 때, 그 방어벅은 무너지고 고통에서 벗어날 힘이 생긴것일거다.
답답하고, 심란한 영화다.
그러기에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목적을 다 달성했다고 보여진다.
그래도 아내의 죽음을 그제서야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 다행이다.
보는 관객도 그제야 마음이 풀린다.
울지도 못하는 답답함이, 아무에게서도 채워지지 않은 공허감이, 새출발할 수 있는 활력이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해야만 벗어날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살아갈 희망을 얻어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 데이비스의 달리기에서 얻어보자.
(이 영화는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아. 음...그래도 난 추천영화 목록에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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