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저
- 문학동네 출판
- 2018년판(2016년 초판)
<책소개>
강보, 배내옷, 각설탕, 입김, 달, 쌀, 파도, 백지, 백발, 수의….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의 목록은 총 65개의 이야기로 파생되어 ‘나’와 ‘그녀’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장 아래 담겨 있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각 소제목, 흰 것의 목록들 아래 각각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밀도 있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나’에게는 죽은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의 사연이 있다. 나는 지구의 반대편의 오래된 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들에 사로잡힌다. 나에게서 비롯된 이야기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겨간다. 나는 그녀가 나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그런 그녀를 통해 세상의 흰 것들을 다시금 만나기에 이른다.
<책 속으로>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p.78. ‘하얗게 웃는다’ 중에서)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게 모든 걸 물들이고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p.81)
가끔 그녀는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헤 얹어보았다.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다.(p.87. ‘흰 돌’ 중에서)
묵은 고통은 아직 다 오므라들지 않았고 새로운 고통은 아직 다 벌어지지 않았다.(p.94. 백야‘ 중에서)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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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중에서>
- 권희철.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1.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 (채식주의자. 2007)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바람이 분다, 가라. 2010)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볼 때 그것이 가능한가 (희랍어 시간. 2011)
내가 정말 인간을 믿는가, 이미 나는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제 와서 인간을 믿겠다고 하는 것일까(소년이 온다, 2014)
2. 작가의 말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물음들은 대담에 이르는 길들이다, 대답이 언젠가 주어지게 될 경우, 그 대답은 사태실상에 대한 진술 속에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어떤 변화 속에 존립할 수 있다”
풀어서 쓰면 이렇다, 질문은 어떤 대답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대답은 무엇인가를 해명하며 질문을 해소하는 진술 속에 있지 않다. 질문이 충분히 개진되었을 때, 그 질문을 숙고하고 있는 사유 그 자체가 변화하는데, 바로 그 ’변화‘안에 답이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그간의 한강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이 자리에서, 섬세한 해석을 통해 정확한 ’답‘을 찾아내기보다, 차라리 질문들 사이의 간격 혹은 변화를 더듬으면서 그 사유의 운동을 우리의 읽기 안에서 다시 발생시켜야 한다. (pp.143~145)
3.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에는 어떤 결핍의 원리가 있기때문에, 바로 그 결핍으로 인해서 타자의 이의 제기와 부인에 노출되고, 절대적 내재성(혹은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포기할 수 있다. 바로 그 노출과 포기 속에서, 타자에 의해 나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부단히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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