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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사서(四書)

by 비아(非我) 2024. 10. 13.

- 엔렌커 장편소설

-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출판

- 2011

 

 

 

문화대혁명이 부정한 지식인들의 존재 가치와 기억!
중국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옌롄커의 비운의 걸작 『사서』.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루어진 지식인 탄압을 다룬 내용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정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자국에서는 출간 금지를 당한 작품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황허 강변에 자리 잡은 강제노동수용소 99구. 사상이 불충하다는 중앙 정부의 판단이 내려져 그곳에 보내진 종교인, 교수, 예술가, 작가, 과학자 등의 지식인들. ‘작가’는 자진해서 <죄인록>이라는 밀고서를 쓴다. 그리고 동시에 <죄인록>을 쓰라고 받은 종이와 잉크를 일부 빼돌려 남몰래 자신의 최대 걸작 <옛길>을 쓰기 시작하는데…. 문화대혁명으로 말살당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어느 지식인의 처절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사서, 즉 네 권의 책인 <죄인록>, <옛길>, <하늘의 아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액자 소설처럼 배치하여 각기 다른 인물과 장르를 넘나들며 서사를 진행시킨다. 미완의 장편소설, 일부 삭제된 정부 보고서, 미완의 철학 연구서, 신화적 상징을 내포한 장편소설을 겹쳐가며 문화를 혁명한다는 이름으로 국가 차원에서 금지당하고 부정당했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복원시켰다.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려는 작가의 노력과 믿음, 야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출판사 책소개에서)-----------------
 

중국의 소설은 중국드라마의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

중국 드라마를보면 우리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모습을 보여주어서

그 나라가 공산국가 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도 적나라 하여, 중국 정권이 보여주기 싫어하는 그들의 숨은 이면

잊고 싶어하는 역사적 치부를 여실히 드러낸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중국의 실상과 숨은 이면을 파악하는 데는 소설만한 것이 없다.

 

이 엘렌커의 소설 < 사서> 또한 그러한 소설이다.

엘렌커는 중국 사회의 아픈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부터 견제당하는 작가에 해당하는데,

특히 이 소설 <사서>는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한 소설 중 하나이다.

가끔 러시아의 전 '소련' 정권하에서 뛰어난 작가의 소설이 출판되지 못하고 금지 당하거나

작가가 망명하기도 했는데,

중국은 여전히 구 시대적 통제하에 있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 국가 혹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의 비민주적인 모습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에 해당하지 싶다.

 

이 소설은 '문화혁명' 당시, 위배를 당해 강제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독특한 구성과 내용, 그리고 문체로 표현하고 있어

강한 몰입도로 읽어내려가면서도

자유를 빼앗긴 노동의 잔혹성과 인간의 나약함, 지식인의 허구성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에 의해 그 사악함을 드러내게 되는가?

살아남고자 하는 본성과 동물적 본능과 욕망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기술을 하진 사람이라 해도

열악한 환경하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살아남고, 자유를 얻고 싶은 욕망은 타인을 헤쳐서라고 얻고 싶은 것이 본성이기에,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종이꽃, 별 하나에

서로를 팔아넘기기도 한다.

지식인을 사상교화하여 다시 사회로 내보낸다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통제과 강제노동이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하고,

그 속에서 서로를 감시하고, 죽이고, 살아남기위해 더욱 잔인해지는 인간성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인간을 조정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매슬로의 욕구설에서 처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라

어느 선에 있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러기에 조정하고 통제하기가 쉬운 존재에 해당하는 것일거다.

아이들만 벌과 상을 적절히 조절하여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처럼, 종이꽃, 별 다섯개로 자유를 살수 있다는 조건에 인간이 목을 매게 하면

얼마든지 통제하고, 전념하게 만들수 있는 나약함을 가진 것인 인간의 본성이기에.

 

우린 살아가면서 무엇에 목을 매고,

무엇을 가장 갈구하며

스스로의 인간 다움을 잃어버리고 통제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자유의지'를 주었을 때

우린 권력에 아부하고, 타인을 짓밟으며, 자신의 생존과 안락을 위해

스스로 그 의지와 자유를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된 이 '수용소'의 생활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슬프다.

 

우리가 많은 지식을 쌓고, 학문을 익힌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인가?

지식인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무언가 공헌을 할 때 그 의미가 생긴다.

농사를 짓게하고, 강제로 많은 생산량을 얻기위해 피와 땀을 흘리게 하는 데는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다.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그런 힘이 지식인이 가진 힘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

자유를 찾아 별을 달고 떠나가는 사람들과,

그곳이 비옥한 토지라고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의 교차는

인간이 어디에 있든 '자유로움' 이 존재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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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고목에 파인 상처가 결국에는 세상을 보는 눈이 되는 것처럼, 위신구는 이 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풍광과 역사를 갖고 있다. (p.315).  소설속의 저자가 쓰는 소설 <옛길>의 첫머리)

 

- 징벌이 주는 고통이나 변화, 무료함, 황당함, 죽음 등에 일단 협력하거나 적응하게 되면 징벌은 의미를 잃게 마련이다. 징벌은 태형으로서의 힘을 잃게 되고, 적응은 무기력함과 부득이함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도출해내게 된다. 이것이 인류가 진화하면서 발전시킨 체념과 타성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타성의 체념 역시 의미 있는 저항과 능력을 갖는다 타성은 순응을 낳고 적응은 힘을 갖는다.(p.533 '16장. 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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