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두 여성의 20년 동안의 관계를 다룬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 처음 헝가리에서 1987년에 발간되어 저자를 국민작가 반열에 오르게 했고, 그보다 한참 지난 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오랜 기간 여러 세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작품이다. 저자는 전쟁과 혁명의 역사를 거치며 힘든 삶을 살아온 에레멘츠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세심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명한 작가인 ‘나’는 집안일을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면서 에메렌츠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에메렌츠는 무척 독특한 인물로,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기 주관이 확고하다.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일을 할지 공식적인 합의도 없었고, 보수가 얼마가 될지도 그녀 스스로 정했다. 며칠 동안 아예 오지 않기도 하고, 밤늦게 나타나 새벽까지 부엌을 청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행동은 나름의 합리성 아래 이루어지는 것들이었고, 놀랍게도 심지어는 교양인인 ‘나’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나’와 에메렌츠, 두 여성은 어느새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지만 작가로서 염원해온 ‘나’의 성공과 함께 둘 사이에 파국이 다가오는데…….
- 수상내역 : 2003 프랑스 페미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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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급 :
우리가 흔히 칭하는 지식인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차이
지식인은 모든 것을 교육받아야만 행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이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배척하고, 자신의 이익을 쫒는다.
명예를 존중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정부를 신뢰한다. 그러기에
지식인(빗자루를 들지 않는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들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삼아 죽이고, 배척하는 일에 아무런 가책이 없다.
작가는 에메렌츠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친구를 외면한다.
그녀가 꼭 필요한 곳에 그 필요를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핑계로 옆이 있어주지 않는다.
에메렌츠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목숨걸고 숨겨준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토록 헌신적으로 돌봐준 남자의 딸은 자신의 일로 인해 에메렌츠와의 약속을 어긴다.
그래서 에메렌츠의 말처럼 무슨 일이든 저지른다.
그러나 빗자루를 든 사람들(에메렌츠의 분류에 따르면)은 이와 정 반대다.
그들은 배척하고 분류하고, 명예와 이익만 쫒는 지식인들을 싫어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에메렌츠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그는 적이건 아군이건 다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자기집에 숨겨주고,
살생당할 뻔한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키운다.
에메렌츠는 마을을 위해 늘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고, 눈을 치운다.
음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 돌본다.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누가 정말 자연과 가까운 참된 인간인지를....
지식인들의 가식은, 쓸모없는 이념은 참 된 사람 앞에서 벌겨벗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들을 무시하고,
무식하다고 배척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외면한다.
동양 사상으로 치면
참된 깨달음은 지식에 있지 않다.
2. 노동 : 빗자루를 든 사람들은 몸으로 일한다.
그러나 빗자루를 들지 않은 사람들은 머리로 일을 한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타자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남을 부리기만 할 뿐 ,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이야기 이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 더 신성한 노동인지를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구분짓기다.
우린 어떤 노동이건 신성시 해야하는데 , 봉건시대는 노동하는 자와 부리는 자로 구분할 수 있었겠지만
산업사회에서는 다르다. 이것이 자본주의하에서의 노동의 개념이다.
3. 문( The Door) : 이 책의 제목이 '도어"라는 점에서 '문'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담을 쌓고.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통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문'이다.
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품어 주고, 의지하며, 서로 돕는다.
주인공인 작가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유일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에메렌츠다.
그래서 그녀가 없으면 안절부절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에메렌츠는 모두를 자신의 울타리 안(마당)으로 받아 들이지만 정작 문은 열지 않는다.
그러나 문을 열고 받아들인 사람(동물)은 절대 내보내려 하지 않는다. 꼭꼭 숨기고, 사랑하며, 보호하려 든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문 안에 갇혀 살려 하지 않으므로 늘 상처받고, 배신을 당하게 된다.
문을 열고 누구나 받아들이되, 문을 열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느 것에도 얶애이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묶어두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
그런 점에서 에메렌츠는 모두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였지만
정작 자기 자신 또한 문안에 가두어 두려 했기 때문에 불행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늘 열어두는 것
가장 어려운 일이다.
(ps) 이 소설속에서 별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작가의 남편은 그런 점에서 참 인상적이었다.
에메렌츠가 첫눈에 알아본 사람. 그는 지식인 이면서도 작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사람과 사건을 알아보는데.
마지막에 '자신의 욕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마을사람들에게 배척당한 이(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를 에메렌츠와 같은 종류의 사람임을 알아보고 교묘한(간교한?) 아델대신 추천을 한다.
왜 나는 마지막 장면에 가장 긴 여운이 남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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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p.118)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슬로건을 내걸든, 어떤 깃발 아래에서 국경일 행사를 하든 그들은 모두 똑같았다.(p.154)
신은 우리가 무언가를 청할 때 보통 그것을 들어주지 않지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항상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p.157)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운명적으로 뒤엉켜 있으며, 예측 불가능한 감정인지를 나는 철저히 분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열정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것도 아닌 그리스 문학을 알고 있었고, 죽음, 사랑, 애정이 맞잡힌 손과 그 손에 쥐고 있던 번득이는 우리 둘의 도끼도 알고 있었다.(p.163)
에메렌츠는 관대하고 좋은 사람, 기꺼이 자기 것을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부정하지만, 행동으로 하느님을 존경하며 헌신적이다. 나자신이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강제해야 하는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이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해도 중요치 않다. 에메렌츠의 훌륭한 점은 바로 이 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나는 단지 그렇게 교육을 받았을 뿐이며, 일정한 윤리적 표준을 염두에 두고서 나중에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이다. (p.216)
글을 쓰고 싶었지만, 창조는 지식의 은혜로운 결과일 뿐이기에 그것이 제대로 되려면 그 많은 모든 것을 갖추어야 했다. 흥분과 평온함, 내부적인 고요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긴장된 감정들이 있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요소들이 부족했다.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