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에르노 지음
-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판 (1983년본 번역)

- 1984년 로노도상 수상작
- 아니 에르노라 기록한 아버지의 삶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아니 에르노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그의 말과 제스처, 취향,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사실을 바탕으로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해 옮겨 적은 이 작품은, '어떤 현대 문학과도 닮지 않은 압도적인 걸작'이라는 평과 함께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은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정확히 두 달 후에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진행되었던, '고상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덤덤하게 흘러가는 장례식과 사망 이후의 형식적이고 통상적인 절차들을 끝내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작가에게 찾아온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는 단조로운 방식으로, 현실이 스스로 제 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쓰인 이 소설은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벌어진 나와 아버지와의 거리, 계층간의 거리 역시 드러낸다. 언제나 '두 강 사이를 건너'게 해준 '뱃사공'이자,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자식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부심, 심지어 존재의 이유였던 '한 아버지, 한 남자의 자리'는 다시 한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옆의 '자리'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교보문고 책소개에서)--------------------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논고는
아마도 "계급횡단자들-비재생산"일 거다.
위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따라서 <계급횡단자들>에서 말하지 않는 이야기만 해보자.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어쩜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이야기여서 일 수도 있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노동자 계급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프랑스나 우리나 모두 엇비슷함에 놀라워서 일 수도 있다.
아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 생활하다보면
아니 에르노의 어린시절의 동네 모습,
" 이웃들이 옆집 빨랫줄에서 마르고 있는 옷들이 어떤 옷들이며 잘 빨렸는지를 감시하고, 그 집 요강이 매일 비워지고 있는지 여부를 훤히 꿰고 있는 마을에서는"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인양 느껴지기도 하니까.^^
도대체 시골에서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다.
불쑥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노인분들에 당혹해 하는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다.
에르노는 .프로스트'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프로스트가 묘사한 시대와 아버지의 시대가 같은 시대임을 놀라워했다.
그들에 비하면 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대는 '중세'다 라고 말한다.
우리도 가끔 산골 출신의 후배와 이야기 하다보면 같은 시대에 산 사람 맞아? 라고 놀라워할 때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들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행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의 조건을 둘러싼 굴욕적인 장벽들 (<우리집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해>)하는 의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순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아아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P.57)
- 계급횡단자들이 느끼는 두 계급사이의 굴욕감과 소외감, 그리고 자기정체성의 혼란 등을 표현한 말이다.
" 이들세부적인 것들의 의미 규명은 이제 내게 하나의 절대명령으로 다가오며,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껏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확신하며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모욕당한 기억만이 그것을 간직해 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욕망에 굴복해 왔던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이 세계의 욕먕에 말이다."(p.79)
- 어느 누구도 '구별짓기'에 벗어날 수 없다. 우린 더 나은 게급(?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진)의 문화에 자신도 속하려고 애쓰고, 가난한 어린시절과 환경을 감추려 한다. 교양없는(이 또한 구별짓기에서)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그 천박함이 자신과 별개인양 행동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아버지는 뭔가 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는 소심해지고 뻣뻣이 굳어져서 상대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요컨대 똑똑하게 처신했다. 이 경우 <똑똑함>이란 우리의 열등함을 인식하되, 이 열등함을 최대한 숨김으로써 거부하는 데 있었다. (P.84)
- 우리가 다른 계급을 만났을 때 일상적으로 보이는 행동?
부모들은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투사하여, 대학을 나오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식을 자랑스러워한다.
마치 에르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p.127)
"단지 저 옷 입은 꼬락서니 좀 봐라고 말하는 듯한 여자 점원의 스 쳐다보는 시선"(p.101)
- 내가 운동화를 신고, 구두를 사러 갔을 때, 백화점에서 유명 메이커의 옷을 사러 매장에 들렸을 때, 혹은 경차를 타고 호텔 입구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느낌이다. 고급 향수나 고급와인 매장에서 주늑드는 것처럼.
경제적 위치는 늘 우리에게 열등함을 부여한다. 또 다시 구별되어지는 계급이다.
아니 에그너가
아주 담백하게, 사실적으로 다양한 요인의 예를 들어가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 (p.125)
이 책을 읽으며
난 나의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그리도 작가에게서도 본다.
씁쓸한 일이다.
나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사회적 구별짓기. 그리고 경제적, 문화적 열등감.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리
남자들, 그리고 아버지의 자리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