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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by 비아(非我) 2025. 9. 1.

- 보흐밀 흐라발 저

- 김경옥, 송순섭 번역

- 2006년판

- 품절된 

 

 

‘체코 현대 소설의 아버지’ 보흐밀 흐라발의 대표작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체코어 완역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2005년 '체스카텔레비제'(체코 국영방송국)에서 체코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코의 가장 위대한 인물' 설문조사에서 5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체코인이 사랑하는 작가이며, (참고로 프란츠 카프카는 55위, 밀란 쿤데라는 85위였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그가 자주 찾던 선술집을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이윤기 씨의 영어 번역으로, 1980년대 중앙일보사에서 출간된 ‘소련, 동구 현대문학전집’에 수록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작품으로, 체코에서 영화화되어 196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의 작은 간이역을 배경으로,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체코인들의 슬픈 삶을 사실적으로, 하지만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습 역무원 흐르마는 소심한 성격의 스물두 살 숫총각으로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나 3개월 만에 근무에 복귀한다. 하지만 독일군에 점령당한 기차역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달리는 기차에 끌려들어가 총살당할 뻔하고, 화물차량 가득 실려 오는 아사 직전의 불쌍한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그런 암울하기만 한 현실과는 달리,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낙천적이고 유쾌하다. 역장 란스키는 업무보다는 비둘기 키우기에만 열중하고, 배차계장 후비츠카는 젊은 여자 전신기사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은 인물로 여자 뒤꽁무니를 쫓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주인공 흐르마 역시 역장 부인에게 사정을 하는 등 총각딱지 떼기에 여념이 없다.

주인공 흐르마는 결국 레지스탕스 아가씨와 성공적으로 일을 치르고 진정한 남자(?)가 되어, 후비츠카 씨를 도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란 병력이나 탄약 등을 수송하는 경계가 매우 삼엄한 독일군 열차를 뜻하는 말이다.

냉혹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이 작품은 파시즘에 저항하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진한 휴머니즘도 내재하고 있어, 소련 공산당국에 의해 체코에서는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결혼 피로연이 열리는 왁자지껄한 간이주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간이주점」도 함께 실려 있다.

 

------------(출판사 서평)-------------------------------

 

누군가가 소개를 했는지,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언급되어, 호기심이나 읽게된 소설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것을 기차 속에서 읽기 위해 가벼워 들고 나갔다.

작고 가벼워, 기차여행중에 단숨에 읽어벼렸다.

재미있는 소설.

 

이 책은 도서관에도 없고,

품절된 책이라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데

누군가가 중고서점에 내놓아서 택배로 받아보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희생을 감수하게 한다.

집단 광기는 전쟁을 부르고.

좋은 리더는 만인을 행복하게 하지만

한 독재자는 만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어리석은 자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정말 명언이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린 슬픔과 아픔.

적이건 아군이건

인간은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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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독일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진격해 오던 그 해 3월, 독일군에게 맞서기 위해 앞으로 나선 사람은 오직 우리 할아버지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한 사람만이 최면을 걸어, 진격해 오는 독일군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독일군 앞에 나서셨다. 할아버지는 독일군 기계화 부대의 선봉을 이끄는 선도 탱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이 탱크 포탑에는 해골과 열십자 뼈 모양의 배지가 달린, 검정 베레모를 쓴 독일 군인이 상반신만 내놓은 채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앞으로 걸어가셨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내밀고 독일 군인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뜬 채, “탱크를 돌려 돌아가라!”라는 주문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걸어가셨다. (16쪽)

기관차가 덜컹거렸다. 눈 덮인 벌판이 하얗게 빛나면서 뒤로 멀어져 갔다. 눈이 녹으면서 눈 입자 하나하나가 영롱한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선로 옆 도랑에 죽은 말 세 마리가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지난밤에 독일 병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량 문을 열고 밖으로 내던져 버렸을 것이다. 이제 죽은 말들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처럼 뻣뻣하게 굳은 네 다리를 하늘로 쭉 편 채, 선로 옆 도랑에 처박힌 신세가 되어 있었다. (46쪽)

우리는 높은 철조망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서서, 각자 붉은색 페인트가 가득 든 양동이를 발밑에 둔 채, 페인트 브러시를 하나씩 들고, 같은 울타리를, 그녀는 그녀 쪽에서, 나는 내 쪽에서 칠해 나갔다. (중략) 2km쯤 칠해 나간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 높이의 울타리를 칠하면서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맞은편에서 그녀 역시 내 입술 높이의 울타리를 칠하면서 자기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눈을 은근하게 바라보았다. 마침 그곳은 도랑이었고 주위에는 키가 큰 명아주가 자라 있었다. 나는 입을 삐죽이 앞으로 내밀어 칠하고 있던 철조망 사이로 그녀와 입맞춤을 했다. 조금 후 눈을 떠보니, 그녀의 입 언저리에 철조망 눈 모양의 붉은색 페인트 줄무늬가 찍혀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우리는 아주 행복했었다.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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