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해진 장편소설
- 민음사 출판
- 2020년퍈

- 어쩌다 읽고보니, 표지에 빈의자가 그려진 책 두 권 (<남자의 자리>와 <여름을 지나가다>)을 하루에 같이 읽게 되었다.
- 책을 다 읽고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그렇다는 것을 알고 혼자 웃는다.
<남자의 자리>는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아버지, 그리고 한 남자로서 어떤 자리에 사회적으로 위치하는가? 라는 의미에서 표지에 빈 의자가 있었다면,
<여름을 지나가다>라는 조해진의 소설은
소설의 이야기 속 배경공간인 '목수의 가구점' 이기 때문일거다.
그 가구점은
한 목수의 모든 정성과 시간이 담겨있음에도 팔리지 않는 가구들만 가득한
이제는 폐쇄된 공간, 한 편으로 쓸모없어진 죽은 공간에 버려진 가구를 의미한다.
조해진의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를 읽고
<여름을 지나가다>도 읽어보고 싶어져서 도서관에서 빌려 바로 단숨에 읽어 버렸는데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그들의 슬픈 공간과 삶이 나에게 들러붙어
유리벽 저너머에서 계속 울고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우울했다.
타인의 신분을 빌려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호, 다른 집에 30분을 거주하며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죽는 민.
세상이 '필요하고 열망하는 것이 모두 진열되어 있지만 손을 뻗으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공허하고도 매혹적인 상점'인 연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의 삶은 여러면에서 힘겹고,
힘겨운 삶으로 인한 사랑과 관계마저 버겹다.
창으로 비처들 한줄기 빛이나, 무지개는 늘 허상에 가깝다.
허물어질 연립에 살아가는 사람들, 해고된 노동자.
모두의 도시의 삶은 그 많은 빌딩과 집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돌아갈 . 편히 쉴 집은 없다.
"가난은 갑가지 쌀이 떨어지거나 전기가 나가는 식의 상투적인 장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고 구체적으로, 저마다 다른 형태로, 그러나 비참함을 느끼게 할 만큼은 충분히 강렬하게 일상과 일상의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드는 것이다.(p.39)"
뜨거운 열기로, 뜨거운 열병처럼 닥쳐드는 여름은
끝자락까지 버티면
달고, 시린 열매를 맺게 될까?
"여름은 기댈 곳 없는 청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가장 에너지가 넘치지만 열매는 아직 얻을 수 없는 저마다의 여름을 지나가는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안부 인사처럼 전하고 싶었던 작은 바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밀도로 진심입니다."
라고 작품을 끝낸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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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흘러가는 먼지 속에선 침묵이 각기 다른 모양의 집 한 채씩을 짓고 있었다. (p.52)
- 민은 배려를 가장한 무심한 폭력에 대해 생각했다.(p.92)
- 그들의 현수막이 여름의 한가운데서 열매처럼 익어 가고 있을 거라고 민은 믿고 있었다. (p.93)
- 그들의 슬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슬픔과 자신의 슬픔이 교환되고 공유되어 결국 같은 무게로 남게 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다는 게 가장 솔직한 심정인지도 모른다.(p.113)
- 비가 새서 눅눅하게 젖어 갈 수밖에 없는 건 낡은 천장만이 아니다. 삶에도 누수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복원될 수 없는 흔적도 있다. (p.135)
- 차라리 꿈속의 슬픔이 현실을 넘보지 못하도록 그 안에서 완전히 소진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p.149)
- 삶의 테두리가 무너지는 사람같은 인상 (p.151)
-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종우의 어머니가 고독하게, 노동하듯, 한평생 쌓아 온 견고한 기억의 구조물을 꽉 쥔 주먹으로 부수고 또 부수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p.154)
-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혼돈 속에서 살다가 쓸쓸하게 죽었던 오직 나만의 거주지, 여름.(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