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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일야서

by 비아(非我) 2026. 6. 12.

- 한사오궁 장편소설

- 심규호, 유소영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6

 

 

중국 문화 혁명기, 지식 청년의 삶을 그린 ‘지청 문학’의 대표 작가 한사오궁의 소설 『일야서』. 중국에서 1950년대 출생한 세대들이 문화 혁명이라는 역사의 격변기를 지나 청년에서 중년으로 한 세대를 살아 낸 인생의 회고록이다. 마오쩌둥의 상산하향 운동에 참여해 농촌으로 내려온 젊은이들 앞에는 ‘지식 청년’이라고 붙여진 이름과 달리 학교에서 멀어져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식색에 대한 욕망에 잠 못 드는 힘겨운 나날이 펼쳐진다. 어느새 농촌으로 내려올 때 품었던 거대한 공산주의의 이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생존을 위한 고투와 도시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왕년을 추억하는 기성세대의 자부심과 시대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영원한 청년이 된 이들의 자기 고백은 중국 근현대사의 가장 생생한 모자이크를 완성한다.

 

- -----------(출판사 책소개)---------------------

 

한사오궁은 중국 현대 문학에서 심근 문학을 제창한 문학가이자 대표적인 지청 작가이다.

' 지청 문학'은 중국 문학사에서 (혹은 세계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정치적 질곡과 왜곡의 산물이자 고통스러운 기억의 회고록이며, 이상과 환멸의 중층 구조를 가진 치청의 정신사이고 한 세대의 인생사이다. (p.597. 작품해설)

'지청'은 '지식 청년'의 준말이다. 하지만 중국사회에서 지청은 단순히 지식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혁명의 도화선이 된 칭화대학교 부속 중학의 학생들은 청소년이지 청년이 아니었다. 다만 농민들이 볼 때 그들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하방'당한 '학생'이라는 점에서 '지식 청년'으로 불렸을 뿐이다. (...) 지청은 가치관을 잃은 세대가 아니라, 사회주의 가치관에 몰두하기로 작심한 세대이다.  이렇듯 지청은 중국에서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낳은 독특한 역사 현장이자 한 세대의 젊은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감내해야만 했던 현실의 모습이다.(p.594. 작품해설)  

 

책 뒤편의 <작품해설>에서는 이 책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일야서>>는 단순히 지청의 생활을 배경으로 문화 혁명 이후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묘사한 것뿐만아니라 독자들에게 인생은 무엇이고, 인성이 어그러지고 억압되었을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p.602)"

 

또한,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은.

"해와 달처럼, 낮고 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질곡과 왜곡, 그리고 이로 인한 미망(迷妄)이 지금 우리의 삶과 우리의 현실, 우리의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p.603)" 고 한다.

 

'정말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니' 이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이다.

삶은 비극이지만, 이야가 되었을 때는 위트와 유머가 섞이는 법이어서 그런걸까?

구성진 이야기를 읽으며, 웃다. 마음 한편이 찡해지기도 한다.

 

삶이 정말 힘들 때는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의 힘이 되어 준다.

그러나 강한 이념 보다는 한 개의 고구마가 더 기쁨을 주는 것이 인간 삶의 나약함이고.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졌을 때는 삶의 방향성마저 사라저 힘조차 빠지게 된다.

사상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사회에서  이념이 무너지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을 때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삶은 또 다른 고달픔으로 자식들에게 되물림 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잘 짜여진 극본있는 영화가 되어 버린다.

 

번역가의 말처럼,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보다가

우리의 현실과 겹쳐지면 곤혹스러워진다.

우린 무엇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있는가? 이념? 이웃? 가족?

자본주의 사회이니 무엇보다 '돈'이 아닐까?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지식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지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일켣는 말이 되었을까?

 

한 인간의 인성이 어그러지고, 억압되어진 비극은

체제의 책임일까? 부모?

모든 것이 본인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까? 그렇게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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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람이란 참으로 기괴한 동물이다. 동상이나 석상을 세울 열정이 생기면 아무리 힘든 날들도 절로 힘겹게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엉롱한 빛을 낼 수 있다. 이후 일부 관찰자들의 눈데 비친 종교가 이런 모습이 아닌가? 종교가 없던 시대에는 혁명이 늘 이런 역할을 대신하지 않았던가? 혁명이 물러간 자리에는 상업적 소비가 이를 채우지 않았던가? 지금은 오락 스포츠, 다단계 판매, 엄청난 투자와 함께 만들어지는 수많은 스타들이 종교 또는 정치적 우상을 대신하여 수많은 팬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고 심지어 자학적인 수준까지 이르는 것도 사실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시커멓게 몰려들어 미친 듯이 고함을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인류의 격정이 다시 한 번 이성을 잃고 자신을 불태우는 것에 불과하다.(p.169. 국제가)

 

-그렇게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눈앞의 것만 보려하지 말라고 그를 타이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가 내민 삶은 고구마 두 개를 받는 순간 눈앞의 배고픔이 더 먼저라는 말이 진리임을 실감했다. 어지러운 현기증을 해결해 주는 데는 혁명보다 고구마가 주효했다. 고구마의 등장이 기쁘기도 했지만 또한 아련히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p.174. 국제가)

 

- 지식이 한편으로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이런 에피소드에서 엿볼 수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당연하다. 그러나 서로를 인정하는 문제에 관한 한 자칫 잘못하면 서로 트집을 잡고, 의심하고, 가르치려 들면서 관계가 무너지고 심지어 지식이라는 무게 아래 감정이 찌그러지며 상대의 지능 지수와 품격에 관한 악담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p.189. 고자질 편지)

 

- 그녀는 참고 또 참았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등에 가득 찬 시선을 느끼며 애써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한쪽으로 돌린 채 등 뒤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관심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렇지 않으며 금방이라도 마음이 허물어져 내리는 순간, 홍수처럼 밀려드는 눈물이 앞을 가려 기차 역사의 모습까지 자꾸 흔들릴 것만 같았다.(p.245. 첫날밤)

- “조금 어렵긴 하겠지, 아마 한 사람을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일 거야. 하지만 가장 큰 승리는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 그들과 다른 것이야, 그게 더 어려워,”(p.247. 붉은 달)

- 이런 밤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이런 밤 하늘가에 털이 보송보송한 붉은 달이 뜬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p.249. 붉은 달)

 

- 인생은 당사자에게 지연되어 방영되는 한 편의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긴 영화 필픔 가운데 지금 한순간이 나에게 이르렀고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틀에서 이미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결과를 연기하고 있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벗어날 수 있는가? 눌론 가능하다. 내가 스스로 동작을 결정하거나 대사를 만들 수 있는가? 그러나 극중 인물이 이따금 자기 생각대로 취하는 행동 역시 사실은 이미 알려진 스토리로 영화 제작자가 자신의 예측에 따라 구성하여 꾸며 놓은 부분일 뿐이다. 문제는 아무도 내게 일 분 후, 일 초 후의 장면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장면이 바로 내 두 손가락을 다시 한 번 문틈에 넣은 것일까? (p.274. 두 개의 손가락)

 

- 삶이란 그야말로 심각하게 훼손된 LP판 같다. 이미 그중 많은 정보를 읽을 수가 없고, 복구할 가능성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p.287. 소인들)

 

- ‘사랑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서구적인 단어가 아닌가? 서양 영화에 나오는 그런 단어, 영화 대사에 나오는 단어 같았다. 나는 그보다는 좋아하다’, ‘ 같은 단어가 더 좋았다. 나는 애정, 가족 간의 정, 우정, 열정을 모두 한데 통틀어 생각하는 편이다.(p.320. 정으로 가득찬 세상)

 

-“당신들은 위로 천문을 알고 아래로 지리를 알며 못하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한 작자들이니 살아가는 게 만족스럽겠지, 그렇지 않아? 당신들은 만사가 태평이러서 흉측한 몰골로 엘리트라고 자처하니 기분이 좋은 거야, 그렇지?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너희들도 인간쓰레기들이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지. 너희들은 눈알이 노래지도록 굻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인을 모면하고,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칠 필요도 없고, 나이트클럽에서 남에게 따귀를 맞을 일도 없지, 너희들은 고리대금업자가 보낸 깡패의 칼에 살해 위협을 당한 적이 없으니 마약 밀매를 하지 않았을 뿐이야. 너희들은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친구도 있어 모든 일이 춘풍에 돛 단 듯 순조로우니 사람을 죽여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는 것처럼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학 입시 시험도 마주친 적이 없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자기 혼자 살려고 애쓴 적도 없고, 노모을 내팽개쳐 본 적도 없으며, 자기 마누라까지 발길질을 해 대면서 마지막 남은 나무 판때기를 빼앗은 것도 없지. 그렇지? 그렇지 않아?” (p.575. 당신은 찾을 수 없어. 샤오웨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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