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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소멸

by 비아(非我) 2026. 6. 20.

- 토마스 베른하르트

- 류은희, 조현천 옮김

- 현암사

- 2008년판

- 총 508쪽의 다소 두꺼운 장편소설

 

 

-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오스트리아의 작가이다..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현대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사건의 흐름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소설을 쓰며, 스스로를 '전형적인 이야기 파괴자'로 지칭한다.

- '소멸' 또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쓰여진 두꺼운 소설이다. 단 3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500페이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넉두리 식으로 씌여진 소설이니, 책을 읽다가 잠깐 나도 나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게 되면, 이야기의 전개를 놓치게 되곤 한다.

 

옮긴이는 책 해설에서 '글쓰기를 통한 트라우마 극복하기'라고 제목을 달았다.

작가는 '볼프스엑 트라우마'를 소멸시키고 싶어 이 책을 쓴다고 했다.

트라우마에 갇힌 작가는 또 다른 찌질함을 그래서 그대로 가지고 있다. 

 

- 부모님과 형이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는 전보를 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1부에서는 부모님이 살고있는 자신의 고향인 볼프스엑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를 혐오하고, 형을 비롯한 두 누이들의 생활양태을 비하하는 말을 제자인 감베티에게 서슴없이 내뱉는다. 광산을 소유한 지주의 부유함 속에서 음악도 모르면서 연주회에 가고, 각계 인사들과 사교모임을 주최하고, 참석하며, 책을 읽지 않고,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하는 삶. 정신적인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물질적이고 소비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문화에 대한 환멸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어떤 곳이 연주되든 상관없이 연주회하면 죽도록 지루해했고, 다만 정신적인 깊이가 없는 매우 천박한 곳이 연주될 떼에만 안색이 밝아졌다. 책도 아주 천박한 책만 몇 페이지 정도 읽다 말았는데, 책 읽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어머니는 매사에 잘 아는 척하며 자기 쪽으로 유리가게 대화를 독점하고는, 사정없이 모든 것을 날조하는 동시에 폄하했으며, 정신의 산물에 대해서는 눈꼽만치의 존경심도 갖지 않았다.(p.438)"

 

2부 "유언'편에은 1부에서 끝없는 과거에 대한 불평과 환멸을 늘어놓다가, 드디어 장례식에 참석하러 볼프스엑에 간 무라우(작가)는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동안 만나는 사람들, 볼프스엑의 사냥꾼, 정원사, 하녀,들에 관한 묘사와 회상이 이어지고, 프롤레타리아인 매제에 대한 혐오감 또한 드러낸다.

 

프롤레타리아는 산업화 이전에는 없던 산업 인간이며, 끊임없이 기계에 의해 굴욕당하고 이 굴욕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계의 노예로서 기계에 의해 비열하게 전락한 인간인 반면, 단순한 인간은, 내가 이해하기론, 결코 기계의 노예가 되거나 기계에 의해 굴욕당함으로써 자신을 파괴하거나 파멸시킨 적이 없는 인간이다. 소시민과 프로레타리아는 가련한 인간들이지만, 기계 문명의 시대가 낳은 견딜 수 없는 산물이며, 그들을 대하고 있으면 우리는 기계와 사무실이 그들을 어떻게 변모시켜 놓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깜짝 놀란다. 기계와 사무실에 의해 대다수가, 대부분의 인간이 파괴되고 파멸되었으며, 포도주병마개공장 사장은 모도주병마개공장 사무실과 포도주병마개 기계들에 의해 파괴되고 파멸되어 견딜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p.291)

 

 

- 1부의 끊없는 불만, 환멸이 2부에 오면서, 왜 그런 사고를 갖게 되었고, 이 소설이 왜 '소멸'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린시절 작가가 좋아하던 공간 '어린이빌라'에 숨어 살았던 나치와, 그들을 숨겨준 부모님. 천박한 소시민적 사고와 학벌과 돈, 지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신흥계급 프롤레타리아, 카톨릭교 등에 대한 모순이 그 당시 오스트리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버지의 친구로 처음엔 같이 학교를 다닌 동창이었고, 나중에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들이 비열한 밀고자요 살인자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버지가 깊은 애정을 갖고 접촉해 온 인생의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는 그들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해으며 힘든 난관을 극복하도록 모든 필요한 것을 주었다. (...) 어린이빌라는 나치 대관구 지도관의 은신처였고,내 생각에는 부모님과 친분 있던 수많은 나치 친위대 장교들도 우리의 풍족함을 즐겼을 것이다. (pp.335-336)"

 

"카톡릭교회는 언제나 그들 입장에 유리하게 행동하며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하고 아주 위험하다 싶을 때면 수천 년간 이용해 온 예수 그리스도를 방패막이로 삼는다.(p.350)"

 

"어린 시절의 방들은 어린이빌라와 꼭 마찬가지로 약탈당하고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텅 빈 상태이며, 어린 시절이 어린이빌라처럼 그렇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어린이빌라에 자행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게 어린 시절을 이용했고, 어머니가 어린이빌라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내버렸던 것과 꼬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조작들을 내버렸으니, (...) 어린 시절은 완전히 유린당했고 나에 의해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했으며, 헐값으로 팔아넘겨졌다.(p.458)"

 

오스트리아 전체가 마치 나치에 협조한 것처럼 쓰여있다는 이유로 많은 논란이 된 작품이다.

그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국민성, 문화를 폄하하고, 이탈리아는 굉장히 우수한 것처럼 묘사된 부분들도 아마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나라로 망명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꼼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텐데....

사람들은 늘 자신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면 화부터 나기 마련이다.

 

'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로 시작하여,' 그가 수럭한 것에 대해 나는 지금 사는 곳이자 이 소멸을 쓴 곳이며 앞으로 계속 살게 될 로마에서부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고 무라우는 쓴다'로 끝나는 이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다른 작품을 구상 중이다. 어쩌면 소멸이란 제목을 붙이게되리라 생각했다. 이 글로써 나는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보릴 것이며, 이 소멸에서 쓴 것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p.414)"

 

 이렇게 이야기는 부고를 받고 , 과거를 회상하다. 장례식에 참석하여 3일장을 치르고 로마로 되돌아와 '소멸'이라는 소설을 쓰고, 죽는 무라이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우리는 모두 볼프스엑 같은 것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그것을 소멸시키기를 원하며, 그것을 기록하고 없애 버림으로써 소멸시키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소멸시킬 힘이 없습니다.(p.151)

"서서히 낡은 것을 해체해 나가야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위해 낡은 것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지요. 그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낡은 것을 없애 버려야만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p.161)"

 

- 작가는 제국주의와 세계2차 대전이 전 유럽을 휩쓸고,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침략과 보수적인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베른하르트는' 문화적 망명'을 택하지 않고, 조국의 현실과 정면으로 맞부칮쳤다. 끝임없이 기득권층과 갈등하면서도작가는 오스트리아에서 저작권법의 유효기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공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언을 남겼다.

 

"수천수만 건의 이런 범행에 대해 우리 국민이 침묵하는 것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범죄다. 국민의 침묵은 섬뜩한 것이다.(p.349)"

 

이 책에서 작가가 쓴 '괴테'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어 옮겨보겠다.

"독일 사람들이 시인의 군주로 재단하고 재봉해 만든 귀족 괴테. 철학적인 들상추를 미끼로 곤충과 아포리즘을 낚는 수집가인 소시민 괴테. 철학적인 소시민 괴테. 낙천주의자 괴테. 광석번호를 매겨 분류하는 자, 점성가, 독일 사람들에게 영혼의 잼을 다목적용으로 가정용 용기에다 담아 주는, 엄지손가락을 빠는 철학적 인사 괴테. 자명한 이치를 책으로 묶어 코타 출판사를 통해 최고의 정신적 자산으로 판매하고 교사들로 하여금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를 주입시키게 하는 괴테. 수백 년간 독일 정신을 팔아먹으면서 예의 그 부지런함으로 평균적 수준의 독일인들에게 의지했던 괴테. 철학적으로 사람들을 꾀는 바이마르의 피리부는 사라이 괴테.(pp.440-41)"

- 이 세상에 괴테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베른하르트가 유일한 것이다.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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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오슽리아를 우리나라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로 

볼프스우엑의 아버지를 일제강점기 때의 지주나,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 바꾸어 보자.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고,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물질만능 주의는 팽배하다.

대대로 학자, 선비집안으로 자처하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현 세대에 와서는 책조차 읽지 않고, 권세만 쫒는다.'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소멸 시키지 않으면, 침묵이 된다.

작가는 말한다.

"수천수만 건의 이런 범행에 대해 우리 국민이 침묵하는 것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범죄다. 국민의 침묵은 섬뜩한 것이다.(p.349)"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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