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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미이엄 핫: 발열시대의 이미지

by 비아(非我) 2026. 6. 30.

- 히토 슈타이얼 지음

- 이계성 옮김

-워크품 프레스 출판

- 2026년판

 

 

동시대 이미지와 현실 세계에 내재한 모순과 그 본질을 특유의 비판 이론과 변증법적 글쓰기로 밝혀온 히토 슈타이얼이 『미디엄 핫: 발열 시대의 이미지』로 돌아왔다.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과거와 결별한 이미지와 우위를 선점하려는 테크 기업들이 벌이는 경쟁 속에서 점점 가속화되는 변화의 징후들을 날카롭게 조사하는 이 책은 팬데믹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처 확산되는 불확실성과 통계적 산물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구실’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예술의 처지를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출판사 책소개)-----------

 

이 책 저책을 인터냇 서점에서 검색하다가. 이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단 표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AI에게 "풀밭에 누워 있는 소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줘"라고 명령을 하였더니,

AI가 생성한 이미지라고 한다.

이 책은 AI 시대에 영상과 이미지에 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과 문제제기이다.

 

 AI의 지능은 이미 인간을 앞섰고,

인간은

모든 것을  AI에게 묻고,  AI의 대답에 따라 사고하는 그런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

 

 AI를 독점한 거대 기업이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쥐고 있고,

우린 정보망에 나를 팔고, 다시 그 정보를 임대하여 사용한다.

 

이 책은 서두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 글들은 기계 학습 기반 기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회, 예술 그리고 여러 노동 형태에 미친 영향의 몇몇 측면을 조명한다. 어쩌면 이 글들은 훗날의 역사가들을 위한 타임캡슐이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들은 이렇게 자문할 테다-“이 모든 것이 막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좀비화의 위협에 맞서, 즉 통계적 순응주의의 도구들에 의해 쓸모없어지거나 산송장이 될 위협에 맞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노이즈로, 그러니까 불규칙한 브라운 운동의 지배 아래 놓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회적 입자로 모델링되기 시작했을까? 그 당시 논쟁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 (p.16)"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율화의 시대에, 자율성에 대한 이전의 개념들은 어떻게 될까?

자율 예술은 결국 기계에 의한, 기계를 위한 자율 예술로 전개될까?

예술 작품에 ‘발사, 탐색, 망각’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그런 포퍼먼스의 관객은 누구일까?

확률적 시스템과 포퓰리즘 정치에 포획될 때, 이른바 상식의 미학적, 사회적 함의는 어떻게 변하며, 이는 미학이라는 개념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 불투명하고 독점적인 시스템에 넘어갈 때, ‘의미’의 의미는 어떻게 변할까? 이미지 제작이라는 열역학적 시스템이 낳은 사회적, 환경적 피해를 어떻게 막을까? 이미 현실화된 AI 기반 무기의 개발과 실전 배치, 그리고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어떻게 교란할까? 기계 시스템의 자율성이 높아져 인간의 사고와 감성이 소모품으로 전락할 때, 인간 시스템과 인간 자신은 어떻게 될까?(P.18)"

 

얇고 작은 책이다.

그러나 논조는 아주 무겁다. 

그래서 읽는 내내 심란하다.

더구나 책을 검은 잉크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갈 수록 빨간 잉크로 페이지를 인쇄해 놓아서

책을 펼쳐든 순간, 당황하며 읽기 쉽지 않다. (물론 인간은 금방 적응하는 동물아닌가? 금방 적응된다.)

아무튼 문체도, 던진 질문도 신랄한 비판도, 인쇄 방식도 파격적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추세,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 그리고 AI에 익숙한 세대의 사람들은

이런 용어로 사고하고,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며 살아가는지. 참으로 충격적이다.

 

지금도 블러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있는 나도, 이미 그런 세상에 종속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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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번아웃 이미지: 열역학적 전환>

- 통계적 사실주의는 관찰이 아닌 양에 기인한다.-규모만 충분하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을 포착할 수 있다는 발상. 그러니까 모든 것을 긁어 모으기만 하면 실재하는 근본적인 패턴도 걸려드리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터넷과 현실을 혼동하게 할 뿐 아니라 실제 관찰이나 분석보다 양을 우선시 한다.(p.41

- 확률적 이미지의 재료는 거대한 테이터의 구르모가, 그 란의 고유한 특징과 패턴을 해석하고 식별하려는 점성술에 가까운 시도들이다. 여기에는 개별사건을 기록하는 일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 통계적 중요성도 미미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아직 체이터세트에 포함되지 않은 미지의 무언가를 포착할 거능성 자체를 지워버린다.(p.41)

- 궁극적 규범인 총체적 확률은 그 자체로 일종의 기계 치매다.(p.42)

오늘날의 프로메테우스 흉내쟁이들은 지식/불을 훔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선물로 주기는커녕) 다시 임대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대기를 달구고 환경을 불안정하게 하는 독점 파이프라인에 노동자들을 예속시킨다.(p.47)

 

<미디엄 핫: 엔트로피의 정치 경제학>

매클루언에 따르면 미디어(텔레비젼)는 더 압축돼 있고 시청자의 더 많은 보완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해상도. 반대로 인쇄물, 사진, 라디오, 영화 같은 미디어는 감각 자료가 풍부하여 그만큼 더 몰입적이라고 메컬루언은 주장한다.(p.51)

- 디지털 미디어, 특히 쇼설 미디어는 이 시기의 권위주의 정권과 권위주의적 경향을 떠받치고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예거가 지적하듯이 인터넷은 정치적 표현의 비용을 급격히 낮췄지만, 급진 정치의 지형을 산산조각 내며 정당과 사회의 경계를 흐리고 온라인 행위자들로 가득한 아수라장을 낳기도 했다.(p.53)

- 사이먼 존슨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이득이 이른바 기술의 소유자들, 더 정확히는 기술을 사유화한 이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나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진보는 발명가나 테크 기업이 아니라 사회 운동에 의해 창출됐다는 말이다. 규제, 과세, 상향식 조직화, 거기에 자동적 진보라는 서사를 다시 쓰려는 시민 사회의 추진력이 거듭 결합해야만 사회적 진보가 이뤄졌다.(p.58)

- 조세는 신석기 말기 이래로 검증되어 온 기술이다. 무급 테스트를 위한 무려 샌드박스, 무료 데이터, 그리고 대규모 사회 실험을 위해 기계학습 기업들이 사회에 떠넘긴 비용을 사회가 환수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다. 규제도 또 하나의 선택지다.(p.59)

 

<관절 포르노 또는 해표지증: 생성형 AI의 계몽의 변증법>

- SD3가 생성한 이미지 속의 팡다리의 부재는 AI 산업의 이윤 극대화가 초래할 향후의 건강 위험과 사회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완화 조치가 지금은 터무니없이 이흡하거나 아예 부재함을 시사하는 지도 모른다. 또한 과학적 합리성이 다시 미신과 범죄적 의료 과실로 퇴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안전장치의 결핍, 나아가 향후 AI 관련 피해에 대한 책임의 부재, 그리고 무책임의 지속적인 확산을 드러내는 징우로도 볼 수 있을 테다.(P.76)

 

<평균적 이미지>

- 기계학습 네트워트가 생성하는 흐릿한 출력물에는 통계라는 역사적 층위가 겹쳐 있다. 기계학습 도구로 생성된 시각물은 실재하는 사물의 이미지가 아닌 통계적 렌더링이다. (...) 평균을 가리킴으로써 규범을 표상하는 셈이다. 유사성(Likeness)은 개연성(likeliness)으로 대체된다.(p.77)

- 평균적 이미지는 잠들지 않는 사회의 꿈으로서, 사회의 비합리적 기능들을 논리적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또한 무질서한 포회과 대규모 약탈로 끌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회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큐멘터리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정치적 갈등을 자원처럼 착취하는, 고된 무권리 노동과 오염을 유발하는 하드웨어로 이뤄진 방대한 인프가가 존재한다.(p.80)
- 이처럼 기술을 보다 포용적으로 손보는 것은 소수자 식별 정확도는 높이면서 고통스러운 저임금 노동을 외주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또한 차별을 최적화하여 상업적 애플리케이션의 외양만 그럴듯하게 세척하는 한편, 노골적으로 착취적인 계급적 위계를 낳기도 한다. 정치 군사적 갈등과 인종주의적 이주 장벽은 이러한 무권리 노동력을 창출하는 핵심 도구다. 어쩌면 편향은 버그가 아니라 비열한 생산 체제의 핵심 기능일지도 모른다.(p.90)

사용자는 노동을 수행하거나 심지어 노동의 도구와 결과물에 접근하기 위해서조차 클라우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사일로화된 생산 환경에 익숙해진다.(p.93)

디지털 기업들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사유화하고, 그 데이터로 만든 제품을 다시 사용자에게 판매하는 식의 준독점적 형태를 기술 연구자 드웨인 먼로는 초 렌티어 구조’(super rentier structure)라 부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술 산업은 여러 공공재를 가로채 놓고, 본래 개방돼야 할 것들에 대한 접근권을 우리에게 임대하고 있다.

프로그래머, 홍보 전문가, 웹 디자이너, 경리, 회계 담당자 등 많은 디지털, 향정사무직 노동자들이 기계학습 기반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기계학습에 의한 자동화로 완전히 대체되기보다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동을 탈취해 만든 서비스를 임대해 가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도록 강요받을 공산이 더 크다.(p.94)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거대한 추출과 착취의 체계속으로 통합

야누스의 얼굴 하나가 평균성을 향한다면, 다른 얼굴은 공통성을 학수고대하고 있다.(p.95)

 

<디지털 균열: 빈곤한 이미지에서 파워 이미지로>

인터넷 자체를 구축하는 에너지, 그러니까 컴퓨터, 네트워크 연결, 이동통신 기지국과 그 밖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력. (내재 에너지, 줄여서 에머지(emergy)라고 불렀다)

이처럼 이미지는 자연으로까지 이어지는 연속체의 일부다. 이미지의 생성과 순환은 탄소 발자국, 오염, 폐기물, 그리고 자원 채굴을 생성한다. 이는 기후 변화를 악화시킴으로써 식량과 식수 안전, 전염병 발생 가능성, 이주의 양상, 분쟁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 기반 문화는 정체돼 있으면서도 주변의 모든 것을 움직인다. 대기를 달구고, 사람들을 이동시키며, 자원을 태워 없앤다.(p.103)

 

<우리가 불을 지른 게 아니다.: 물리적, 디지털 파이프라인>

오픈AI의 대규모 언어 모델 GPT-3를 훈련시키는 데는 1,287메가와트시의 전기가 소비되어 55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환산량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 사람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550회 왕복할 때 발생하는 양과 맞먹는다. 검색 엔진이 활용 가능하도록 GPT-3를 거의 매일 재훈련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p.112)

분쟁은 값싼 에너지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 경우 분쟁은 값싸고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력, 달리 말하면 인간 에너지를 낳는다. 겉보기에는 자동화된 기계학습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는 노동의 디지털 파편화라는 조건 속에서 일하며 자잘한 작업 하나에 1센트도 못 받는, 가리어진 신생 하츨 계급인 세계적 테이터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운영된다.(p.115)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AI, 예술 그리고 상식>

GPT의 가장 르네상스적인 면모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같은 오픈 AI나 메타의 계산적인 광고 문구 따위가 아니라, 그 특유의 복성성이다. (...) GPT는 주인의 하수인 노릇을 하도록 최적화돼 있다. 첫 시도에서는 점잖게 거부할지 몰라도, 이런 안전장치를 우회하도록 쉽게 설득 가능하다.(p.131)

 

<코코의 바실리스크: 인공적 아둔함과 실존적 위험>

코코의 바실리스크는 초지능 범용 인공지능으로 상정된 특정한 괴물이다. 그렇다면 이 괴물은 어떤 국가 형태를 대변할 까?

아마도 바라지 스리니바산이 2022년 동명의 저서에서 제안한 네트워크 국가일테다. 네트워크 국가는 클라우드로부터 물리적 공간을 식민화하는 존재다. 먼저 암호화폐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마이크로네이션, 크라우드펀딩된 영토, 시스테딩을 통해 점차 물리적 공간을 잠식한다.(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