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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by 비아(非我) 2026. 7. 17.

- 똑똑한 사람들은 왜 민주주의에 해로운가

 

- 마이클 린치 지음

- 성원 옮김

- 메디치 출판

- 2020년판

 

 

가짜 뉴스가 단순히 내 맘에 들지 않는 뉴스가 되어버린 시대,
독단의 확산과 오만의 정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영어에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노잇올(know-it-all)’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책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명절 때마다 정치 이야기에 핏대 올리는 술 취한 삼촌이나 커피 마시는 것 하나까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피곤한 친구에 관한 일화를 넘어서 우리의 정치적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더 나아가 문제의 핵심이 자리하게 된 ‘노잇올’, 즉 도덕적이고 지적인 오만함의 문제를 탐사한다.

오늘날 우리는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거대한 심연을 느낀다. 둘 사이에 공통분모는 갈수록 적어지고 심지어 가장 하찮은 사안마저 논쟁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 ‘가짜 뉴스’는 그저 내 맘에 들지 않는 뉴스를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그리하여 기후변화와 백신, 그리고 선거 결과 같은 ‘사실’의 문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저자는 탈진실의 시대에 인간의 조건이 되어버린 오만함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깊숙이 탐사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확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경멸과 우월감으로 무장한 채 파벌주의의 덫에 빠져버린 민주주의에 확실한 경종을 울린다.
 
-------------(출판사 책소개)----------------
 
 
소통이나 설득이 불가능하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그래서 '정치'와 '종교'에 관해서는 토론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 법칙이다.
서로의 평행선을 절대로 좁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편파적인 '지적 오만함'을 버리고,
대화와 협상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즐겁고 유쾌하게 대화하는 법>>을 일고 
크게 실망하여,
아마도 이 책에 자극을 받아, 저자(리 메켄타이어)가 직접 대화하는 법을 찾아나섰나 보다는 생각에
원조격인 이 택을 집어들었다.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논리에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다.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지적 오만함'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부분이고,
우린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에서 '팡'터진 부분이 두세곳 있는데,
아마도 나의 '편견'과 '지적 오만함'을 들킨 부분이지 싶다.
 
예를 들어 한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p.191)
"당신에게 사라들이 당신의 정치적 관점을 믿게 만들 수 잇는 약이 있다. 당신은 그걸로 뭘 할 것인가? 인조주의자 삼천에게 줄 것인가? 지역 국회의원에게 보낼 것인가? 상수원에 넣을 것인가?
  당신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어쨋든 정치는 판돈이 큰 게임이고, 사람들이 '진실'을 믿게 만들어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약을 상수원에 기꺼이 넣을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의사 결정이 가능한 존재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옳바름의 알약을 사람들 모르게 물속에 닙어넣는 행위는 기본적인 존중에 분명 위배된다."
 
 
그렇다. 
'5장 자유주의와 정체성의 정치' 첫장(p.149)에 쓰여진 이 글귀를 보고,
난 당연히 '상수원에 풀어야지'라고 대답했다. 상수원에 풀어서라도
현 정치상황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존중'하지 않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p191의 이 설명을 읽고는, 
아. 나도 내가 옳다는 '지적 오만함'을 지니고 있구나. 하고 반성했다.
물론, 나도 이 책 한권을 읽고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오면서 굳어진 사고의 습관과 가치관이 쉽게 변하겠는가?
하지만, 한정된 앎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 이상을 강조하는 노자의 말처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취선이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결함이다.(p.202)"
지적 겸손함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우리가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정한 옳음을 판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과학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뉴스에 현혹되는 것은
또 다른 거짓과 배척과 파벌을 낳는다.
열린 마음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가지고 있는 편견 "우리는 옭고, 너희는 틀렸다'고 하는 '지적오만함'을 '지적 겸손함'으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만함은 오만함의 기반에 대한 자기 망상을 발파능로 삼는다. 지적으로 오만한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우월함이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부심에 대한 방어적인 관심을 반영한다."(p140)
 
답답한 세상에 가하는 일침이다.
'똑똑한 사람은 왜 민주주의에 해로운가' 
나만이 옳다는 지적 오만함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틀렸다는 '지적 상대주의'가 통용된다면,
그럼, 우린 무엇을 기준으로 진실을 세워나가야 할까?
아다도 인간에 대한 '존중'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정치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도 실천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두려움을 안기는 관점을 포용해서는 안된다."(p211)
 

"산다는 것은 확신을 갖는 것이고 믿음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것인가'를 참되이 알 수 없다."(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