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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 책· 영화. 그리고 채움과 비움.
책을 친구삼아

그녀를 지키다.

by 비아(非我) 2026. 7. 9.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장편소설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출판

- 2025년판

 

 

데뷔 이래 단 네 권의 소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 19개를 수상한
지금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작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빛나는 걸작
 
펴내는 소설마다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장편소설 「그녀를 지키다」가 정혜용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세계 3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수도원 지하에 유폐된 피에타 석상에 숨겨진 비밀을 석공 미모의 굴곡진 삶을 통해 풀어 가면서, 파시즘이 득세하던 당시 이탈리아의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 속에서 태생적 한계와 사회적 난관에도 꺾이지 않는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해 소설의 장면 장면을 마치 영화의 한 컷처럼 생동감 넘치게 담아 냈다. 바티칸이 피에타 석상을 수도원 지하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비밀스러운 사연부터, 왜소증을 타고난 천재 석공예가의 고난과 역경, 그의 운명인 오르시니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의 자유를 향한 투쟁까지. 우리는 책장을 넘기며 이탈리아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의 오렌지나무 가득한 풍경 한가운데에서 짙은 사이프러스 향을 맡고 석공의 돌 쪼개는 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주인공 미모와 함께 하나의 생애를 살아낸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공쿠르상이라는 영예가 결코 무겁지 않은, 귀하고 드문 걸작이다.

 

------------------------(출판사 책소개)-----------------

 

617페이지에 달하는 다소 두꺼운 장편소설이다.

물론 소설이라 쉽게 읽히며 재미까지 있다.

 

이 소설의 영리함은 소설의 구조에 있다.

현재와 회상을 겹쳐져 엮어진 소설은

한편의 추리 소설처럼 뒷이야기에 숨겨진 비밀을 궁금하게 한다.

 

천재성을 지닌 조각가이지만 왜소증이라는 외모적 컴플렉스를 강하게 안고 살아가는 미모와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나서 한번 읽은 책은 내용을 다 기억하지만, 귀족집안이라는 굴레와 여자라는 시대적 굴레속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보지 못하고 추락해 버리고 마는 비올라의 이야기.

 

파시즘이 만연한 이탈리아.

1,2차 세계대전, 유대인의 학살 등의 문제로

전 세계가 들끓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군상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삶은 어느시대에서나 벅차고 힘든 일이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예술과 꿈을 만들어 내는 힘은 결국 인간에게서 온다.

 

잘 들어라, 조각한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야, 우리 모두 너와 나 그리고 이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와 관련된 이야기 훼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가닿을 때까지 켜켜이 덮인 사소한 이야기나 일화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거란다. 그 이야기에 가닿은 바로 그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춰야만 해. 이해하겠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싶게

아름다운 문장들에 밑줄을 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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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상대방은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원래 그런 표정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아침에 일 나갈 때 둘러쓰고 저녁에 벗어 놓을 게 틀림없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p.26)

 

그는 낡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어머니가 맡긴 돈봉투를 꺼내어 삼촌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비탈리아니 집안의 저금이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타국살이, 노동, 태양과 소금기에 그을린 피부, 여러 번의 재출발로 점철된 세월이 통째로 말이다. 나의 탄생을 지켜보던 그 애정은 어쩌다가 살짝 내비치면서, 손톱 밑에 대리석 가루가 박히도록 노동으로 채우던 세월이. 바로 그런 이유로 그 더럽고 구겨진 지폐가 소중했다.(p.32)

 

오르시니 가문은 오로지 신의 우위만을 인정했지만, 자신들의 사업은 신의 부재를 틈타 관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p.53)

 

좋은 돌은 없답니다. 제가 알아요, 그런 돌을 찾느라고 수많은 세월을 보내봤으니까. 몸을 숙여 내 발치에 있는 돌을 올리는 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p.54)

 

우리는 우리 주위로 비처럼 쏟아붓는 그의 업신여김을 뒤집어썼는데, 이 세상 곳곳에서 미래의 혁명가들을 흠뻑 적셔대는 업신여김과 동일한 종류였다.(p.59)

 

한낮에 군림하던 확실함과 분명한 윤곽선이 물러난 자리에 흐릿한 경계선과 흑갈색 그림자의 세계가 들어섰고,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렸다.(p.73)

 

밤의 차가운 대기와 만난 우리의 숨결이 하얗게 뭉쳤다.(p.102)

 

내 부모는 늘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여자들은 수염을 달고 남자들은 보석으로 치장하리라는 걸. 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 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그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 (p.143. 비올라가 나(미모)에게 한 말)

 

피에트라달바에 도착한 이래로 나는 그곳을 엉성한 천국으로,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하기는 했지만 전 세계를 찢어발기는 격동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보호받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왔다. 그날 아침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결국, 나의 어미니와 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창문은 동일한 불길을 향해 나 있었다. (p.176)

 

거닐다. 나는 보통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위해서, 뭔가를 갖다 놓거나 가져오기 위해서 걸었다. 나의 걸음은 실용적이었다. 거닌다는 것은 사회적 특권,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예술이었다. 나는 여자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하얀 양산을 쓴 채 웃고 있는 동안, 입술에 시가를 물고 서로 한담을 나누며 잔디밭을 성큼성큼 걷는 그런 남자들의 여유로움을 갖지 못했다.(p.210)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나는 그에게 고개짓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 사람도 나도 감정의 분출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핍, 조여 맨 허리띠와 함께 태어난 사람들로, 이런 환경에서는 감정초차 아끼기 마련이다.(p.270)

 

우로보로스 : 꼬리를 먹는 뱀, 다양한 문명권에서 보이며, 영원성을 상징한다.(p.330)

 

나중에 가서야 그리워하게될 그 이전을 지금 살아가고 있었다.(p.346)

 

비올라의 두 눈이 마치 18년 전에 내가 무엄하게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떠났을 때처럼 나를 태워버렸다. 우리 둘이 꾸준히 다투는 원인은 어쩌면 결국 거기에, 그러니까 우리 둘이 함께 분노하던 시절에 대한, 기사는 선하고 용은 나쁘며 사랑은 점찮고 상대방에게 가하는 일격은 매번 숭고한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그런 시대에 대한 단순한 향수 속에 있는지도 몰랐다.(pp.417~418)

 

나는 정치를 하지 않았고 종교에 귀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종교는 피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치는 퇴폐적인 애인이라 그 열정에 사로잡히고 만다.(p.428)

 

극적인 사건들은 시간을 늘어뜨린다. 비올라가 시간에 관해 아무 말이나 했던 게 아니라는 증거. 정신이 조금 전의 순간에서 굳어 버리고 믿기지 않는 마음이 시간의 톱니바퀴에 들러붙어 운행을 늦추는 바람에 초대객 중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현실이 몰아쳤다.(p.496)

 

비차로와 사라는 시궁창에 처박힌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이었다. 내 최악으리 모습을 알았던 누군가와 길에서 엇갈렸다가, 그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임을 발견하게 될까 봐 그저 두려워서 그랬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카르티에의 탱크 시계를 차고 맞춤복을 입는 오늘날의 미모 비탈리아니는 사기꾼에 불과하니까.(p.522)

악의 아름다움은 바로 악이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결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악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p.528)

 

그러니까, 영혼의 무게를 재야 할 순간, 내가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하는 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여야 하리라.(p.535)

 

그곳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이용해 유대인을 학살했다. 내가 그런 인간들을 위해 일했다. 악이 지나가도 모른 척 눈감았다. 나중에 가서야 징징거리며 자신들은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낫다면, 그건 바로 내가 징징거리지 않았다는 것, 그 어떤 변명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p.545)

 

이제 그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모든 감옥은 다 거기서 거기이니까. 수감자들 역시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믿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다는 죄.(pp.546~547)

 

자유를 잃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게 있었으니, 바로 자유에 대한 의욕을 잃는 거였다.(p.553)

 

나는 교회를 믿어, 그 말이 그말이긴 하지만, 정권이나 독제자와는 반대로 교회는 사라지지 않아

그거야 교회의 약속이 지켜졌는지 아닌지를 말래 주러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이제껏 한 명도 없었으니까.” (p.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