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리히 뵐
- 임횽배 옮김
- 창비세계문학 69
- 2019년판

1945년 5월 8일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던 날, 탈영병 한스 슈니츨러는 엘리자베트 곰페르츠 부인을 만나기 위해 독일 쾰른의 빈센트 수도회 병원을 찾아간다. 부인의 남편 빌리 곰페르츠는 한스와 같은 부대 소속의 군법무관 서기이다. 한스는 탈영 중에 체포되어 감옥 대용의 헛간에 감금되는데, 빌리는 자신의 군복을 한스에게 입히고 도망치게 한다. 한스를 탈출시킨 빌리는 헛간에 머물러 있다가 독일군에 의해 한스로 오인받아 총살당한다. 한스는 빌리의 유품인 군복을 그의 부인에게 전달하고자 그녀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엘리자베트 부인이 며칠 전에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의 주소를 확인한다. 탈영병 검거를 피하기 위해 병원 의사의 도움으로 가짜 신분증을 입수한 한스는 추위 때문에 무심코 걸친 외투를 돌려주기 위해 우선 외투 주인을 찾아간다. 그는 갓난아기를 잃고 혼자 빈집에 살던 외투 주인 레기나와 차츰 가까워지며, 두 사람은 폐허가 된 일상에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한편 빌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풀리고, 엘리자베트 부인에 대한 피셔 박사의 유산상속 포기 압박이 극에 달하며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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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드라마를 보면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전쟁을 일으키는 황제와
주변국간의 세력다툼으로
그 사이에 희생되는 것은 백성들 뿐이라는 대사가 아주 많이 나온다.
이 소설도 어쩌면 그런 생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1,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나치에 동조한 세력은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것이 마땅한데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일반 사람들만 그 희생을 감당하고,
전쟁으로 살아남은 자들조차 혹독한 삶을 살아가야함은
하늘이 내리는 벌에 해당하는 걸까?
우린 독일민족이 전쟁을 일으키고, 그에 동조하였으니 마땅히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소설을 보면,
독일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나치에 동조한 것은 아닌데,
전후의 삶이 이토록 피폐함은 누구 책임으로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된다.
천사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천사상을 밟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부자와 권력자들.
'신의 이름으로'이루어진 모든 일은 결국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슬프고 우울하게 그려진 2차대전 종료후의 독일인들의 삶.
나치에 동조하고 협조했던 사람은 오히려 물질만능주의하에서 더욱 부자가 되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들 딸마저 희생된 사람들은 한끼의 식량도 얻기 어려운 상황.
우리나라 해방후의 역사와도 어쩜 이리 비슷한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하인리히 뵐은 전후 전쟁이 야기한 혼란한 사회와 인간상을 아주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전후 독일사회의 불균형적 발전과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결여,
그리고 카톨릭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결국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힘은
한줄기 인간애와 사랑임을 담담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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