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시집, 문학과지성사
'내일의 불활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는 시인.
그래서 지극란 절망의 끝에서 가을을 본다.
저 산 빛깔과 바람의 온도, 낙엽의 행진처럼 쓸쓸한 풍경이
스스럼 없이 고통으로 체험될 때 가을은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 찬사되지 않는다.
깡마른 풍경으로 사물들은 방치되고, 몸과 마음의 운신 또한 덩달아 힘겹다.
누구도 연결해내지 못하는 언어만이 꿈과 현실에서 떠나간 애인들을 기억할 뿐
말 오줌 냄새를 풍기며 펴수로 고이는 가을이라는 막다른 현실
그 끝에서 황혼을 업은 강물이 마비된 한 쪽 다리로 찾아가는 바다에서
저를 죽이고 말 것을 믿으므로 더없이 충만한 고통 속에서 붇는다.
여기가 어디냐고, 언제쯤 이 불구의 마음과 지류의 삶이 무한의 바다에서
죽음처럼 고요해질 수 있느냐고
마음에 추를 달아 끝없이 추락케 하는 개 같은 가을에 우리는 모두 무엇이냐고
참을 수 없는 아픔이 구차하게 번져가는 '매독 같은 가을' 이 저주의 가을에
한 달음으로 달려가 그 풍경 다 받아내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뭐냐고....
- 시평에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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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읽은 이 시가 올 가을은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시 보다 더 시 같은 시평을 읽으며...
개같은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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