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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이야기

교권과 학생인권

by 비아(非我) 2020. 9. 10.

제목을 적어 놓고 보니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냥 어떤 책을 읽다가

거기에 나온 글귀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본다.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위해 인권규칙을 정하고, 체벌을 없애고, 하는 일들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들고, 교사의 교육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학부모들이 교사를 향해 역으로 폭력(언어적, 물리적)을 행사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

교사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교사들은 '학생인권 보장'으로 인해, '교권'이 실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권이 제로섬게임일까?...하는 생각을 평소에 해오다가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다 차별에 관한 글귀를 보고,

이렇게 바꾸어 보았다.

 

"다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전망이론 prospect theory을 통해, 사람들이 손실의 가능성과 이익의 가능성 가운데 손실의 가능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회피편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반영하듯, 한국사회에서 인권침해 개선은 특권을 잃은 학생 입장에서 교사보다 더욱 크게 체감한다.

기존에 특권을 가진 교사들에게는 학생인권보장이 교권침해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인권보장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학생의 인권보장이 곧 나의 교권 침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학생의 인권 보장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전반적 인권이 보장되는 문화가 형성되어 곧 교사의 인권보장도 이루어진다는 것이 더 논리적인 추론인데도 말이다.

교사가 학생을 체별하고, 복장을 단속하고, 공부하지 않는다고 모욕을 주고 하는 일련의 행위가 교사로서 가진 권리라고 여긴다면 이는 일정한 지위에서 누리는 권리로서 특권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권보장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하고 인권 침해에 반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그로인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

 

인권은 사회모든 곳에서 보장되어야 하고,

학생인권이든, 교권이든 똑 같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치 우리 아이의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선생님들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들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문화가 훼손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인권도 함께 허물어 짐을 생각해야 한다.

인권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한쪽에서 지켜지면 다른 쪽 또한 보장되어 더욱 풍성해지는 (이것을 붙여진 이름이 없나?...^^) 그럼 것이라고 믿는다.

교사들과 학부모 모두 인식을 전환하여 인권 침해가 어느곳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성숙한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몫이 아닐까?...

 

파주 우물을 나온 개구리(갃도별 학생인권자료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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