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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그리스인 조르바

by 비아(非我) 2021. 1. 14.

- 니코스 카잔자키스(지은이)

- 이윤기(옮긴이)

- 열린책들

- 2009년판

 

<책소개>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며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작가는 그를 힌두교도들의 ‘구루(사부)’와 수도승들의 ‘아버지’에 빗대었다.

조르바는 물레를 돌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리는가 하면, 여성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며 수도승을 꼬여 타락한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등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르바는 혼돈에 찬 인간이 아니다.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지식인을 대표하는 주인공 오그레에게 조르바는 ‘절대 자유’의 초인과도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운 이들이 지향해온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삶의 메토이소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메토이소노’란 ‘거룩하게 되기’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과도 같다. 이를 염두하면 소설 속 조르바가 풍겨내는 마음과 행동과 모습들은 단순한 기행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르바의 행보가 자유를 향해 멈추지 않는 ‘거룩한 영혼의 투쟁’으로 승화될 것이다.

 

-(알라딘 책소개)--------------------------------------------

 

- 누군가 강의를 하면서 이 책을 언급하기에 다시 생각해 본 소설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는 20대 때 한 번 읽고, 나이들어서 다시 한번 읽은 소설이다. 20대에는 조르바의 자유로움과 삶에 대한 열정을 참 부러워했었는데, 나이들어서 읽은 조르바는 '가정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자유로움'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자유와 관계에서의 책임 부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어가는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처럼 어려웠다. 조르바가 "여자들은 왜 자유를 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여자들은 아기를 낳고, 가정을 보호해야 하는 모성적 본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생명은 자유다' 그래서 '화폐, 조국, ,이상, 혁명'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분에 대해 하나 하나 현 실상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자유로움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이 될 수 있겠어 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면, 다시 생각해보면 이 자유로움은 실체를 갖지 않은 곳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현대인들은 '돈'을 우상화 해버렸고, 아이들의 꿈도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며, 좋은 직장이라는 것도 연봉이 높은 직장을 꿈의 직장이라 말한다. 이 것을 위해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화폐로부터의 자유가 이것을 말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국으로 부터의 자유로움이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 외에도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난민들'을 배척하고, 타 국가에 대해 서슴없이 봉쇄령을 내리는 모습들을 보며 '조국으로 부터의 자유로움'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따져보면 '신'이라는 이름으로 생해지는 멀리 '십자군 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부조리들과 폭력, 배척들. 

 '이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싸우고, 서로 배척하는 민주정치 속의 당파 싸움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의 합리화들,

이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를 외쳤던 조르바는 그래서 더욱 혁신적이고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시대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랑도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을 소유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조르바를 보며, 우리가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집착과 소유를 갈망하고, 타인을 구속하였는지..

    결국 20대에 조르바를 만났으나. 인생을 후반부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 난 소설속의 두목처럼 머리로 생각만하고, 결코 시행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도 함께, 그렇지만 또 결국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앎과 실제생활의 분리된 채. '자유로운 삶'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갈구로만 존재하는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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