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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by 비아(非我) 2021. 11. 1.

환상에 사로잡힌

 

- 박제원 지음

- EBS북스

- 2021년판

 

 

<책소개>

 

학력 저하, 학력 격차 심화
껍데기만 남은 미래교육의 현주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 학력 저하, 학력 격차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내 초·중·고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고 특히 중위권이 무너지면서 상위권과 하위권 양극단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수업 방식마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됐다. OECD가 실시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수학, 과학 분야에서도 2012년 이후 우리 학생들의 순위가 계속 하락하는 형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교육당국은 궁색한 변명을 일삼고 여전히 장밋빛 전망만 내세우며 학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학교 교육의 첨병인 현직 교사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저자는 환상과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미래교육을 객관적, 실증적으로 비판한다. 코로나19가 학교 교육의 비정상적인 운영을 불러오자 수면 아래 있었던 미래교육의 허상이 드러났다며 이를 계기로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다.

 

--------(교보문고 책소개 중에서)------------------------------------------------

 

 " '지식'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며, '기억'은 가장 인간답고 으뜸인 학습이다."

라는 지은이의 주장에는 누구나 동조한다. 어떤 교육에 대한 입장을 가졌건 학습이 학생들의 장기기억을 늘리고, 이 기억을 활용한 다양한 문제해결과  비판력 그리고 창의력을 길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러한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작은 견해차에서부터 교육에 대한 근본적 이론차에 따라 주장과 근거 또한 다르다.

이 책은 현

"교육당국은 4차 산업혁명 포고와 함께 ‘지식’과 ‘학력’의 자리를 ‘역량’으로 대체해 학교와 교사, 학생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적, 개념적 지식인 ‘무엇(What)’을 아는지 먼저 묻지 않고, 절차적 지식인 ‘어떻게(How)’ 해내야 하는지 가르치고 배우라고 강조해왔다. ‘미래교육’이라고 불리는 이런 철학과 지침은 자연스럽게 ‘지식’과 ‘역량’의 양분과 대립을 불러왔고,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지식의 바탕이 되는 사실이나 개념, 원리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교육은 낡은 방식으로 치부되었고, ‘검색’과 ‘체험’, ‘공감’과 ‘협력’만을 맹신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고  비판하면서 '지식'을 경시하고 ;역량 만을 강조한 현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맞는 이야기 이다. 하지만 '지식중심'교육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안이 없다.

'지식중심교육'의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이 현재 '역량중심'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육방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현장에서는 역량을 강조하긴하지만 지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학습은 개념을 이해하고, 기본 원리를 터득하는 지식교육에서 더 나아가 , 이것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관련지어지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 하는 것 등으로 더욱 발전적으로 지식활용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역량'을 강조하는 것이 왜 '지식'을 경시하는 것으로 여기는 걸까?

'역량'에는 '지식,이해'의 역량도 포함되며, 다른 '역량'을 키우고 발현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일부 편협한, 혹은 미래교육에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는 일부 교사들의 해석을 마치 전체 교육전반의 문제인양 논의하는 것은 교육청과 다름없는 편협한 사고에 해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미래교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한 이유이다.

 

지은이가 다양한 교육이론과, 뇌과학에 관한 이론들로 이야기 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지식중심'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례들에 해당되지만은 않는다. 이는 협동학습, 토의학습, 프로젝트 학습 등과 같이 '학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라는 방안에 관한 논의와 연구들과도 연관되져 현재도 교육현장에서 연구되고 도입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교육과정의 문제점과 미래교육을 지향하는 교육청 정책의 문제점을 혼동하고 있어, 마치 같은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오류이다. 현행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진 시점과, 현행 교육감들이 '혁신교육'을 내세우고 지향한 시점은 다르다. 마치 현 교육의 문제점을 혁신교육감들의 정책의 오류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행 학생들의 성적격차가 심해지고, 행복도 지수가 떨어지는 것이 '역량교육'의 문제점만일까?

교육은 사회경제, 정치 모든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문제점이 가장 큰 교육의 병폐로 자기잡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함께 풀려지지 않는다면 '지식중심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도  학습에서 '지식'의 중요성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학생들이 암기하여 장기기억화해햐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험을 보기위해 단기암기를 해왔던(소위 벼락치기 공부나 시험을 위한 공부) 그런 학습에는 반대한다.

이러한 생각을 '지식'을 경시하는 태도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 어차피 서로의 양극단에서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지 않는 편협한 사고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제제기는 필요하고, 혁신적인 교육개혁도 필요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좋은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시행된 정책이나 일들이 처음과 다르게 적용될 때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서 오류를 범하고, 전혀 엉뚱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현행 '역량중심'교육과정은 도입단계에서부터 '역량'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에 관한 교육현장의 이해와 협의 없이 도입되어져서 아직도 '역량'에 대한 교육현장의 정확한 합의와 이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활동중심 수업' '학생 자기주도적 학습'에 관한 많은 오해로 교사들이 마치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그리고 '개념이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게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맞는 수업방식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교사들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린 이런 문제점들을 늘 토의하고, 협력하여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지은이의 주장('지식교육의 중요성)과 논리(다양한 이론과 연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들에 나도 거의 대부분은 찬성한다. 그리고  대단히 방대한 연구와 명석한 논리력에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현 교육과정에서 주장하고 있는 '역량'교육의 강조가 현 교육현장에서 '이러, 이러하게 잘못 교육되고 있으니, 이러이러하게 '지식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교육해야 한다. 는 식으로 발전적으로 논조를 펴나갔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으리라 여겨져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제기는 정당하나, 다 읽고나서 또다른 분열과 편가르기를 조장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하면서.

이 책은 교육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토론하며,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대안에대해 교육현장에서 반성과 수정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므로. 비판을 하든, 수용을 하든...

 

<책속으로>

-  '배움'은 학습과학 원리를 따를 때 일어나고 교사의 '수업역량'이 미래교육의 운명을 좌우한다.

   교사의 역할은 단지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는 것에만 있지 않다. 교육을 맨 앞에서 이끄는 첨병으로서 권력자가 정서적 언어를 통해 학습과학 원리를 조작할 때 침묵하거나 동조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교사로서 첫 마음과 책무를 돌이켜보게 되고 지식과 역향의 대립이 권력자의 편협과 독단, 비상식적인 틀 속에서 만들어진 모래성임을 깨달아 그동안 잊었던 학습과학 원리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일부 교육청은 한발 더 나아가 역량 중심의 교육을 어떤 의심도 할 수 없는 진리나 성역처럼 공고화했으며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교사들을 합당한 근거나 토론도 없이 ‘전인교육’보다는 ‘경쟁교육’을 옹호한다거나 교육의 내적 본질인 ‘자아실현’을 방해한다며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교사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교육하라고 해놓고 교육청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기이하고 반교육적인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p102~103, ‘클라우스 슈밥에 대한 미신’ )

 

- 교육청은 지식교육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학교에 지침을 내려보내기 전에 먼저 대학 평준화의 길을 모색하고 대학입시 전형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자녀들을 위한 고른 기회 전형 비중을 늘리는 데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했다. 또 교육당국이 힘닿은 데까지 교육 혁신을 하겠다면 냉철한 이타주의자처럼 지침을 세울 때부터 앞으로 닥칠 부작용까지 깊이 생각해야 했다. 최소한 새로운 학력관이 정착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의 삶을 실제로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큼은 편향되지 않게 다양한 의견을 개방적으로 들어야 했다.(P.244)

-( 이 말은 사실 교육청보다는 교육부에서 결정할 교육정책에 대한 일침으로 봐야 한다. 교육청은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위의 주체를 교육부로 바꾼다면 - 혹은 교육정책자들로 바꾼다면- 그들이 정말 경청해야할 일침이다. 우린 대학교전형,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한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지식중심'이냐, '역량'중심이냐 논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교육은 '대입시 중심'이니까. 모두 한마음으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노력을 해야만 나머지 문제들이 논의할 가치가 생길정도로.)

- 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하는 문제는 이제 모든 나라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또한  교육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은 모든 문제의 뫼피우스 띠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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