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 박상준 옮기
- 황금가지 출판
- 2009년판
<책소개>
독서가 금지된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환상 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대표작『화씨 451』. 〈화성 연대기〉와 함께 레이 브래드버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인간의 생각이 통제되는 사회에 대한 경고가 담긴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이다. 책이 금지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라져가는 정신문화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정보만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사람들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가까운 미래.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독서는 불법으로 규정된다. 책을 불태우는 것이 직업인 '방화수' 가이 몬태그는 아무런 의문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 날, 생동감 넘치는 옆집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면서 몬태그는 자신의 삶이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클라리세가 갑자기 실종되고, 몬태그는 변화하기로 결심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인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상징한다. 출간된 지 60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스미디어에 중독되어 살아가면서 독서와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멈춘 현재의 젊은 세대에 대한 경고를 전해준다. 또한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정보만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사람들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가까운 미래.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독서는 불법으로 규정된다. 책을 불태우는 것이 직업인 '방화수' 가이 몬태그는 아무런 의문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 날, 생동감 넘치는 옆집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면서 몬태그는 자신의 삶이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클라리세가 갑자기 실종되고, 몬태그는 변화하기로 결심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인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상징한다. 출간된 지 60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스미디어에 중독되어 살아가면서 독서와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멈춘 현재의 젊은 세대에 대한 경고를 전해준다. 또한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교보문고 책소개)---------------------------------------------------
『1984』,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84』가 당시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면, <화씨451>은 정체체제보다는 문화적 통제에 관한 , 특히 '책'이라는 소재를 통한 사상통제에 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책의 검열' '영화' ' 노래가사'등의 통제와 검열, 삭제 등은 우리사회에서도 얼마전(민주화 이전)까지 행해졌던 문화통제에 해당하는 일이라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문화적 통제가 규제가 꼭 미래사회의 일만은 아니게 느껴진다.
또한, 현재에도
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 텔레비젼, 스마트폰 등의 미디어들을 이용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의 단일화, 비판력 억제 등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작은 화면에 메달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문화
SNS나 미디어의 생각들을 비판없이 진실인양 여기는 사람들,
더이상 자연과 함께 호흡하지 않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들
서로에 대한 관심을 단절한 채 극히 개인화 되어가는 양태들.
이 모든 양상들이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화씨 451> 읽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골치아픈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 앤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알고 싶어 했어, 정말 골치아픈 일이지. '왜?'라고 의문을 품고 그걸 고집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 분이야' (p.102)
' 사람들에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득 집어 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을 주입시켜야 돼,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가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감을 느끼게 될 테지, 그리고 행복해지는 거야." (p.103)
미래사회에 인공지능이 우리 대신 사고하고, 계산하고, 일해주고, 사람들은 메타버스 속 현실 속에서 즐기기만 한다면
그 속에서 행복하다면, 정말 괜찮은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디스유토피아 소설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에 대해 항상 우려와 의문이 든다.
저자는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 책은 아주 세밀히 짜여진 것이오,(...) 현미경을 통해서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오, 끊임없이 넘쳐 나는 이야기와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오. "라고.
그리고 책을 말살해 보린 세상에 부족한 것 세가지를,
"첫 번째는 좋은 정보의 질, 두번째는 그 정보를 소화할 충분한 시간, 그리고 세번째는 지금 말한 두 조건의 상호 작용으로 얻어지는 우리의 배움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리" 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은, " 즉각적, 말초적이고 다양한 차원을 지녔소. 당신이 생각할 것은 모두 벽면이 제공해 주지, 거기서 말하는 게 모두 옳은 것 같이 보이고, 모두 옳아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려 주니까 당신은 미처 생각해 보고 반박할 여유도 갖지 못하오." (p.138)라고, 미디어에 대달려 사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방화수’만이 아니다. 최초로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였고, 또한 책을 불태우는 방법은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의 내용을 자기 식으로 비판하고, 해석하고, 왜곡하는 (난도질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책을 수정하는 편집자에 의해서도, 책을 비판하는 비평가에 의해서도’ 책은 불태워진다.
결국, 작가는 미래사회의 양상을 통해 현재 사회의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 미디어에 매달려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쓰여진지 오래된 이 소설이 지금도 다시 읽히는 이유는 현재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