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부코스키 장편소설
-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판 (1971년작)

미국 문학 최고의 안티히어로,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소설. 부코스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쓴 첫 장편으로, 하급 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0년간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후 발표된 일련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된다.
여태껏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캐릭터가 끊임없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작품이다. 금기시되는 욕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하지만 선의는 물론 악의조차 부재하기에 세상 모든 질서에서 자유로운 인간 헨리 치나스키. 여자, 술, 경마 세 가지가 삶의 전부인 하층민 치나스키는 매일 새벽 숙취에 찌든 몸을 일으켜 우체국으로 출근한다.
비에 흠뻑 젖은 우편 자루를 짊어지고, 살벌한 경비견을 따돌리고, 가학적인 상사와 정신 병원에 가도 이상하지 않을 동료들을 견디는 일상 속에서 그는 영원히 노동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는 우체국 하급 직원으로 12년간 반복적 노동과 비합리적인 관료주의에 시달리면서도,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만은 결단코 사양한다. 지극히 저속하지만 한 점의 여과도 없이 표출되는 그의 자유분방함은 사회가 정한 기준을 당연시하고, 그런 사회의 병폐를 애써 외면하는 이들을 향한 일갈이다.
------------(출판사 책소개에서)------------------
그의 문체는 유쾌하다.
꾸밈이 없고, 본능적이어서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을 즐겨읽어온 독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원초성이 좋다.
그냥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무런 감정이나 꾸밈없이 느껴지는 대로, 어릿속에 떠오르는 노동자의 언어로 그렇게 쓰여진다.
이 소설은 틀에 박힌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이고,
개인의 인간성은 철저히 무시되는 소외된 노동에 대한 거부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후 미국사회는
과학적 경영을 표방하는 테일러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고, 포드주의에 입각한 경영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산업사회 초기 찰리 채플린의 영화 '돌아가는 기계에서 한없이 나사를 끼우는 노동자'를 연상하게 하는데,
(중국 위화, 뤼신 등의 소설 속에서도 이런 관료사회가 가진 병패를 볼 수 있다. 어는 사회나 비슷비슷한가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자본가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혹은 업무생산성과 효율성을 높힌다는 명목하게.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 할당량을 채우도록 강요하고, 잔업과 시간외 근무, 잔업을 강요하던 시기이다.
소설을 쓰고 싶으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체국 근무를 포기하지 못하고,
아이가 4명이나 있기 때문에 가장으로써 관료사회의 모순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한없는 기계적 업무에 병들어가고,
길에서 쓰러지는 우체부가 당연시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무거운 우편 가방을 매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업무량을 채워야 했기에)
업무량과 업무속도,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같은 시간대에 일을 마쳐야만 경고장을 받지 않는. 등등의
당시 우체국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 당시 관료사회에서 병들어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문을 열었더니 사람들이 있었다. 우정 사업 본부 직원들, 한 여자는 불쌍하게도 팔이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 영원히 있겠지. 나처럼 늙은 주정뱅이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뭐, 다른 동료즐이 말하듯이 어디에서라도 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게 노예의 지혜였다.(P.232) "
헨리 치나스키는 술주정뱅이, 호색한 경마 도박꾼, 게으름뱅이에 규칙이나 질서를 철저히 무시하는 반 사회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옆사람이 쓰러지고 죽어가도, 처다보지 않는 다른 직원들에 반해
동료를 걱정하고,그릐 아픔을 알아봐주는 사람이다.
잘못된 것에 홀로 항의하고,
부조리에 혼자 항거한다.
그는 우체국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 별로 달라진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곧 깊은 바다에서 너무 빨리 나온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특수한 유형의 잠수병이었다. 나는 조이스가 길렀던 빌어먹을 잉꼬들과 다를 게 없었다.(P.236)"
우린 소설을 잃으며
선의도 악의도 없는 한 주정뱅이의 욕설과
모든 것은 성적으로 표현되어지는 모욕을 참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할 수 없음은
여전히 끼어맞추어진 톱니바퀴 속에서 나의 삶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알지만 어딘에서라도 일은 해야하고, 모든 사회는 다 똑같으니까.
그래서 슬프지만,
'우편국에 작은 혁신을 이루었다고' 혼자 좋아하는 치나스키처럼
우리도 그렇게 힘을 어디선가 얻고, 작은 용기들을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모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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