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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 책· 영화. 그리고 채움과 비움.
책을 친구삼아

사탄탱고

by 비아(非我) 2025. 11. 16.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장편소설

- 조원규 옮김

- 알마 출판

- 2018년 판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이 갇힌 고통의 굴레!
2015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이자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국내 작가 한강과 함께 또다시 이름을 올린 헝가리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 몰락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끝내 쳇바퀴에 다시 포박되어 영원한 악순환을 이루는 과정을 절망의 묵시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어가던 1980년대 헝가리. 해체된 집단농장의 마을에 남아 가난과 불신의 늪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보내던 이들 사이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리미아시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그가 가을장마의 시작과 함께 귀환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절망적인 삶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달콤한 꿈에 부푸는 한편, 무언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리는데…….

작품의 제목에 들어가기도 한 탱고의 스텝, 즉 앞으로 여섯 스텝 그리고 뒤로 여섯 스텝의 형식에 맞춰 1부는 1장에서 시작해 6장으로, 2부는 역순으로 6장에서부터 시작해 1장으로 맺으며 하나의 원을 이루는 순환 구조의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각 장마다 등장인물의 시점을 달리하는 등의 형식 실험을 통해 고통의 악순환을 경이롭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헝가리의 작가주의 영화감독이자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거장 벨라 타르에 의해 1994년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 (2025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나온 개정판 책소개글에서)----------------
 
-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우린 너무도 기뻐서 서점으로 달려가
그동안 아직 읽지 않은 몇권의, 빠진 작가의 책을 서둘러 찾아 마저 읽었던 기억이 난다.
2025년 또 다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발표되어서
작년의 영광을 기억하며, 올해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을 읽어보아야지. 하고 도서관에서 찾아 보았다.
다행히 작가의 초기작이면서 대표작이기도 하다는 '사탄탱고'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읽을 수 있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들의 책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편인데,
라슬로 작가의 사탄탱고는 단숨에(?)  읽어버렸다. 음. 재미있다.
그러나, 우울하다.
사탄탱고를 추는 어리석은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비참하여 슬프기까지 하다.

 

사탄탱고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영화는 아주 잘만들어져서 100대 영화에도 꼽힌다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도 보고 싶었으나.

책을 읽고 나서는 그냥 책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답답하고, 세밀한 묘사와 심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는 무척 궁금하기는 하다.

 

이 책은 작가의 초기작이라 헝가리가 아직 공산권일 때 쓰여졌기에

체제 비판적인 소설로 읽힐 수도 있고,

공산권이 무너진 현실에서는 읽는 이마다 다른 느낌과 감상을 가질 것이라 여겨진다.

 

종도 없는데, 종소리를 듣고, 기다리는 사람들

욕망과 거짓과 나태함으로 뭉쳐진 가난의 끝없는 구덩이.

가장 비참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한오라기의 희망이라고 잡고 싶을텐데.

잔혹하게 주어지는 현실은 늘 사탄편에 있다면

정말 절망적일 것이다. 그들의 어리석음도, 게으름도, 그런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늘 약자는 이용당하고, 소외되지만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구원의 손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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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사하는 척하면서 음험하게 치대어 역겨운 호기심을 채우려고 그를 불러 세울 자들이 있었다.(p.104)

 

-하지만 이런 짧고 공연한 죄책감은 그를 깊숙이 뒤흔들어놓기도 전에 곧 사라져버렸다. (그건 과연 죄책감이었을까? 죄책감이란 한번 혜성처럼 작렬하고 나면, 이후엔 여명처럼 희미한 의식의 불편함 정도만 남기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죄책감은 히스테리를 일으켜 임과 목구멍, 식도, 위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p.123)

 

누군가에게 확신을 불어넣고 그의 덧없는 실존을 온전한 존재로 고양시키는 기억은, 어떤 사태로부터 기억 자체의 질서에 따라 실마리를 끄집어내고 기억과 인생 사이의 거리를 단지 그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경직된 만족감으로써 무마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p.128)

 

그는 정신없이 숫자들을 훑어보며 뿌듯해했지만, 동시에 비열한들이 자신을 더러운 계획의 목표물로 삼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해 무한한 증오를 느꼈다.(p.135)

 

하지만 저 사물들은 명령만 기다리는 규율 없는 군대같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벼운 물체들은 서서히 물러났고 무거운 것들은 이상하리만치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모든 것이, 빛이 닿지 않는 깊은 호수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오직 무게만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pp.174-175)

 

위험은 땅 밑에서 솟아나 사람들을 덮치는 듯했으나 그 근원이 무엇인지는 분명치가 않았다. 어떤 때는 적막감에 화들짝 놀라 구석으로 숨어들어 안전을 바라보면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음식을 씹는 게 고통이 되고 삼키는 일도 마찬가지며 주위의 모든 것이 점점 느려지고 공간은 갈수록 좁아진다. 이런 퇴화의 결말은 바로 가장 두려운 마비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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