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없다이트 장편소설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5)
- 2025년 판
- 19금 소설이다. (우리나라 윤리기준으로) 중년기를 다루고 있으니, 중년이상이 읽도록 하자.ㅎ ㅎ

1971년에 발표한 <돌아온 토끼>는 1960년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1960년에 발표한 <달려라 토끼>에서는 청년기를 , <돌아온 토끼>에서는 “래빗 앵스트로”의 중년기를 그린다.
중년기의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난 다음에 그게 터지거나 무너져내리면 그냥 주저않아 입이나 삐죽거리’는 인간이 되었다. 그가 스스로를 평가하듯이, ‘집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애는 나를 미워하고, 여동생은 내가 우스꽝스럽다고’하는 중년의 무너진 삶을 살아간다.
미국의 중간계급의 삶을 얄팍하게 그리면서 가장 미국적인 시대상을 드러낸다. 중간계급을 살아가는 래빗은 ‘살라미 샌드위치’나‘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그리고 tv디너(간편식)을 전자랜지에 데워 아들과 저녁을 떼운다. 아내인 제니스가 해주는 요리는 늘 딱딱한 비프스테이크 정도이다. 그에 반해 상류층 부유한 집안 출신인 질이 오자 식사메뉴가 달라지는데, ‘맥아, 호박, 마름, 샐러리솔트, 파밀리아’등이 장보기에 달라진 메뉴라고 표현한다. 계급의 차이와 문화의 구별짓기는 아주 작은 식단과 구매품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간계급은 ‘섹스’ ‘스포츠’ 그리고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치이야기가 최대의 관심거리다. 하버드 출신인 작가 존 업다이트는 인생의 세가지 비밀이 ‘섹스, 예술, 종교’라고 말했지만. 중간계급에게는 종교가 빠진 삶의 공허함과 불안한 미래, 예술이 없는 저속한 문화와 욕설이 삶의 대부분이어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비밀은 ‘섹스’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우린 가장 적나라한 미국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좋아하는 이유는 솔직한 민탗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연세대의 한 교수가 아주 심한 성장면의 묘사로 소설을 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현재 tv나 인터넷, 그리고 ott는 이보다 더한 폭력과 노출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포르노인지 논의도 제외된 채,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돌아온 토끼>의 배부분의 대화는 욕설로 채워지고, 성에 관한 세밀하고 자세한 묘사는 읽는 이에 따라 과한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빨려 들어 계속 읽게 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묘사력과 남다른 표현력 때문일거다. 그가 미국에서 꾸준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을 거둔 이유이기도 할것이고.
미국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로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유색인 차별’ ‘백인우얼주의’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음에도, 차별을 없애자는 미국인들의 의식 저변에도 모순적이게도 여전히 범죄와 마약은 흑인들의 전유물인양 여기고, 그들을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은 1960년대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차별이 있는 곳에는 늘 폭력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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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어둠은 딱 잠자는 동안만 깔리던 그 관대한 여름날들. 전쟁은 양쪽 바다 너머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그는 그날들을 한껏 누리며 그런 행복을 맛보고, 그렇게 평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p.37)
래빗은 미국의 행동을 ‘실력 행사’라고 묘사하는 건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는 자신의 직관 안에 갇혀 있다. 미국은 실력 행사를 넘어선 존재이며 꿈에 나오는 신처럼 행동한다. 어디든 미국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고, 미국이 없는 곳에는 광기가 지배해 사슬과 어둠이 수백만의 목을 조른다. 미국의 인내심 있는 폭격기들 밑에서만 낙원을 세울 수 있다. (p.74)
때때로 찰리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랬다. 그들의 피는 조급했으며 귄속에선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자꾸 앞으로만 가다보면 느린 사람들이 보는 것을 놓치게 된다.(p.83)
공간과 무위로 쓰인 시는 그들에게는 너무 섬세하고, 너무 느리게 전개된다. (p.127)
세상의 고통은 모든 물약과 알약을 천배 퍼부어도 채울 수 없는 분화구다.(p.136)
두 밤 사이에 낀 창백하고 얇은 조작 같은 낮들, 낮들이 섞인다. 서로 똑같지는 않다. 또 아주 엷은 색조로 물이 들었을 뿐 투명해 보이기 때문에 모두 함께 쌓아놓아야만 컴컴해지면서 치명적인 어둠을 드러낸다. (p. 153)
모든 슬픈 힘과 행복이 다 닳아 구두창처럼 구멍이 난다.(p.188)
입은 다물고 눈은 반항으로 흠뻑 젖어 짙어지면서 나뭇잎 그늘처럼 어두워져 있다. 다수를 감춘 채 흔들리는 잎들, 그는 그 작디작은 숲은 폭파해버리고 싶다. (pp.251-252)
“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데, 왜 사람들은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지 모르지? 두려움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 같은 불쌍한 새끼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는 거야.”(p.253)
“나도 한때는 내부의 빛을 따라 떠난 적이 있지만, 결국 내가 한 짓은 주변에 상처를 주는 것이었어, 혁명. 아니든 뭐든, 그런 건 그저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그래, 실제로 재미있지, 한동안은, 다른 누군가가 먹고 살 걸 책임져주는 동안은. 엉망인 상태는 사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p.256)
하루가 창문들에 대고 흐느끼고 있다.(p.302)
말없는 사랑이 선회하며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자신의 연장인 이 존재에 대한 사랑이 아래로.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 있을 시간으로 흘러내려간다. 막대기처럼 가는 단풍나무들과 낙엽들 사이에서 평평하게 타오르는 햇빛의 불길처럼 서늘한 사랑이다. 그들 자신이 둥글게 말려올라가는 불길이다. (p.461)
시간은 잘못된 침입자가 아니라 우리의 본령이다. 그것을 믿는 마음이 생기는 데 서른여섯 해가 걸렸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p.553)
여성적인 논리다.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 것은 덮어버리고 그것보다 더 오래 버티려고 한다.(p.597)
(그는 이런 성향을 왜 '여성적인 논리'라고 표현했을까? 존 업다이크는 페미니즘 쪽에서 봤을 때는 심한 남성우워주의자라고 비판받을 만한 소지가 종종 보인다. ㅜ ㅜ 그러나 전체적으로 소설 속에 표현된 남자들조차 모두 찌질하고,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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