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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친구삼아

할매

by 비아(非我) 2026. 1. 8.

- 황석영 장편소설

- 창비

- 2025년 판

 

 

장구한 역사와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이야기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지구적 생명을 감싸안는 황석영 문학의 새로운 경지라 이를 만하다. 이 소설은 한마리 새의 죽음에서 싹터 600년의 세월을 겪어온 팽나무 ‘할매’를 중심축으로 이 땅의 아픈 역사와 민중의 삶을 장대하게 엮어낸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별개일 수 없으며 모든 존재가 거대한 인연의 그물망 속에서 순환한다는 웅숭깊은 깨달음을 전하며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하고도 아름답게 존재의 근원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황석영 특유의 힘 있는 필치와 압도적인 서사는 읽는 이를 단숨에 시공을 가로질러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격동의 역사 현장으로 데려다놓는다.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풀벌레의 날갯짓부터 갯벌의 숨소리까지 소설이 포착할 수 있는 세계가 이토록 넓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 책소개에서------------------

 

우린 새만금을 기억한다.

그리고 환경단체와 종교단체들의 반대시위와, 오체투어도.

한반도의 슬픈 역사를 그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할매 팽나무는 이 모든 슬픈 역사에도 그곳에 굳건히 서있다.

 

조선시대부터,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미군기지.

아픈 역사로 인해 파괴되어지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한반도의 한 곳을 통해

군산에서 부안에 이르는 갯벌을 드나드는 수많은 철새들과

그곳에 살고 있던 생명들의 죽음을 본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비에 젖은 길에서 무수한 생명들의 짓이겨진 시체를 보게 되는 일이었다, 트럭이 지나간 자리에 온몸이 처참하게 짓이겨진 개구리의 주검들이 흩어져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작은 곤충부터 시작해서 도로의 옹벽에 가로막혀 차바퀴에 뭉개진 지렁이들에 이르기까지 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없는 주검들이 길 위에 가득했다. 길을 건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고라니, 노루, 달리는 차체에 부딪혀 떨어져 죽은 꿩, 맷비둘기, 작을 새들까지 생생히 보였다. 인가가 가까운 도로에서는 개와 길고양이와 쥐의 뭉개진 주검들이 많았다. 엎드리면 사람도 미물임을 깨닫는다.

  서울까지 팔백리 길을 육십오일 동안 세 걸음 걷고 절하고 가면서 그들은 육신이 부서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으나, 한편으로는 뉘우침의 길이 되었다. 이게 다 이 시절 우리 모두의 탓이라는 참회의 길이었다. 그들이 해창 갯벌을 떠날 때 밝혔듯이 삼보 일배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바치는 안간힘이었다.(p.201)

 

팽나무의 거대한 부름, 수많은 생명들의 노래소리를 들은 사람만이 

지구의 한 생명체로 살아가는 인간의 겸손함을 깨닫게 되는 거다.

 

"헤아릴 수 없는 구멍마다 생명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합창이었다. 갯벌이 밤에는 거대한 노래밭인 거다. 동수는 그 정적 속의 소리를 방해할까 두려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p.190)"

 

우린 늘 자연의 부름과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인간도 그들과 더불어 살아감을 잊고,

그들의 소리에 귀닫고 살아가고 있다고

이 소설은 말한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헛된 욕망에 얼마나 많은 희생들 더 치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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