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소설
- 문학동네
- 2022년판
<명태와 고래> <손> <저녁 내내 장기> <대장 내시경 검사> <영자> <48GOP> <저만치 혼자서> 7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김훈 작가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자의 무게가 결코 가볍기 않고, 표현방식이 독특해서 어떤 장편 소설들은 읽기가 쉽지 않고,
삶의 묵직함이 버겨울 때가 많다.
이 단편 소설집은 그러한 소설들에 비해선 읽기가 쉽고,
우리 주변의 흔한 , 그러면서도 가슴 묵직한 이야기들인지라 금방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삶들은
'한 바닷가 마을'에서 살다가 곳곳으로 흩어져 뿌리내지지 못하고
삶위에 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붙잡혀 엉뚱한 간첩죄로 장기복역한 이춘개(명태와 고래)
바닷가 마을 의류판매점에 있다가 이혼하고, 서울로 발령이 나서 홀로 아들을 키우던 철호의 엄마나
심지어 철호에게 강간당한 연옥의 아버지 목수 마저 물과 관련되어 있다.(손)
일산의 호수공원가에서 장기를 두는 이춘갑도 어촌 출신이나 부도가 나 이혼하고 혼자사는 신세이고,
쓰레기 수레가 얼음판 경사로에 미끄러져 치이고도 오히려 해고를 당한 오개남의 인생도 버림받은 떠돌이 유기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녁 내내 장기)
이혼하고 홀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기다리는 나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나은희(대장내시경 검사)
아버지가 배판 돈으로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나, 함께 동거하는 영자(영자)의 삶.
심지어 나환자촌에서 환자를 돌보던 김루시아 수녀님과 라인강가의 수도원.
이 모든 삶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모습으로 뒤엉켜 있다.
이는 또한 역사 속에서,(구석기 유물 발굴에서, 육이오 전쟁시 전사한 유골 발굴, 그리고 현재 화장한 할머니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고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p.253. 작가의 군말 중에서)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이 작동되고 있었다.(p.255. 작가의 군말 중에서)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 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은 쓸쓸하다. 삶을 해체하는 작용이 삶 속에 내재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p.260. 작가의 군말 중에서)"
후기로 적은 '작가의 군말'에서 처럼,
삶의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 버리는' 사회 속에서
우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에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 기억들은 뒤섞이고 풀어져서 형태는 없고 종이 남새만 남은 그림 한 장이거나,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간의 파편으로 남아 있었다. (p.106. 저녁 내내 장기)
- 시간은 메말라서 푸석거렸고 반죽되지 않은 가루로 흩어졌다. 저녁이 흐르고 또 익어서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말라죽은 자리를 어둠이 차지했다. (p.161. 영자)